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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성에 앞서



여/성에 앞서



이상한 성(城)의 이상한 여성(女性)

편집장 | 민경연

 그곳에 이상한 성이 있었다. 성(性)으로 만들어졌으면서 성(性)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금은 껄끄럽게 느껴지는 이상한 성(城). 여자는 그 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여자는 아버지가 보던 스포츠신문의 저속한 유머에서 처음으로 성(性)의 윤곽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더 알고자 했으나 그 누구도 그에게 그 이상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조금 더 자라고 난 후, 그의 친구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포르노를 보고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우는 법과 성에 대해 조금은 잘 알게 되었노라고 착각하곤 했다. 여자와 같은 성별을 가진 친구들은 그것을 쉬쉬하였으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에 대해 말했다. 여자는 이를 조금 이상하게 여겼으나 이내 제 스스로 납득하고 말았다. ‘여자가 성에 관심이 많으면 정숙하지 못해.’ 그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욕망 중 하나를 슬며시 접어 머릿속 벽장에 넣었다. 무시로 그는 욕망과 죄악감 사이의 좁은 틈에서 헤매었다. 어느 날 그는 귀갓길에 한 무리의 남학생과 마주쳤다. 그들은 여자를 흘끔 쳐다보고는 욕구를 뭉쳐 토해낸 말을 내뱉었다. 정지된 사고. 곧 그는 그것이 성적으로 모욕적인 언사임을 알았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동안 그는 누군가의 필터 낀 눈 끝의 피사체가 되기도, 성적 함의를 담은 손짓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여자의 주변 사람들은 술자리 안주삼아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무엇보다 가벼운 농담이 된 성. 그러나 그것은 놈담 밖에서 때때로 그를 교묘하게 옭아맸다. ‘여자니까’로 시작되는 수많은 말들, 직장에서조차 여자기에 바라는 조금 더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차별. 그 뒤로 붙는 여자의 외모에 대한 무수한 평가. 그는 여전히 대상화되었고 「여자」라는 한 무리의 집합명사로 치환되었다. 그 속에 진짜 자신은 없었다. 문득 자신을 보는 시선의 끝을 느낀 그는 생각한다. 저들의 시선 끝에 욕망이 있다. 욕망. 누군가의 욕망은 공공연히 드러나지만 누군가는 오로지 욕망의 대상으로 전시된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성(城)의 이상한 성(性). 그는 오래전 벽장에 넣어두었던 욕망의 행방을 떠올렸다. 어디로 갔을까. 이것을 다시 꺼낸다면 나는 잘못될까? 아니.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상한 성(性/城)의 기사 

사무국장|박자영

 기사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딸들은 그가 돌아오면 길에 꽃길을 만들었고, 그의 부엌에는 항상 향기로운 요리와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성 밖의 난잡한 성(性) 생활을 한다는 마녀들을 처단하는 것은 기사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성의 사람들을 오염시킬 무리들이었으니까. 

 그 만족감은 기사가 성문이 닫히는 시간을 놓쳐 성 밖에서 저문 해를 바라볼 때 지평 선 너머로 사라졌다. 기사는 성문 앞에서 문을 열어 달라 소리 쳤지만, 성 안에서 대답을 하는 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사로잡은 마녀와 하루 밤을 성 밖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성문에 기대서 모닥불을 피곤, 마녀를 근처 나무에 묶어 놓았다. 마녀는 기사에게 자꾸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당신의 검에 묶인 리 본이 예쁘네요. 맘에 들어요.” 마녀와의 대화는 타락으로 여겨 성에서 중범죄로 처벌되 기에 기사는 침묵을 지켰다. 마녀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 “저를 못 알아보시나요? 저는 당신의 딸 메리랍니다.” 

기사에겐 자신의 발로 성 밖을 나간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메리가 성에서 순결을 유 지하며 항상 순수한 처녀로 남기를 원했다. 그는 집 밖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고, 집 안 에서 여성으로써의 행복한 삶을 자신의 아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남자를 사랑하고 내조 하는 것으로 가르쳤다. 성 안에서 여성은 성 안의 처녀, 아내, 그리고 성 밖의 마녀 세 분류였다. 그렇게 아끼던 메리가 아무도 모르게 “저는 더 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 않아 요.”라는 편지를 남기고 성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두들 마녀에게 메리가 현혹되었다고 손가락질하고 입에 담지 못할 성적 추행, 창녀로 몰아갔다. 

성 밖의 마녀가 자신의 딸 메리였다. 메리는 자신이 매어준 리본을 바라보며 기사에게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하였다. 기사는 금기를 깨고 메리에게 물었다. 왜 성을 떠났는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아무 말 없이.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기사와 메리는 지난 날을 이야기 했고 그러는 사이 새벽의 여명이 밝아 왔다. 기사는 메리가 파란색을 좋아 해 파란색 리본을 매어 주었다는 것을 그 날 밤에 처음 알았다. 마녀도 처녀도 없었다. 메리가 있을 뿐. 

기사는 도저히 메리가 광장에서 불에 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메리를 풀어 주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성 안의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성 안의 사람들은 기사가 마녀를 풀어 주었고, 그와 대화했음을 추궁했다. 기사는 창녀도 마녀 도 아닌 메리였음을 말했다. 하지만 분노한 성 사람들은 그가 마녀를 옹호한다고 외쳤 다. 그가 차고 있는 리본을 보며 “남성이 여성의 리본을 매고 있다!”라며 몰아 붙였다. 기사가 기사의 직책에서 쫓겨난 것은 순식간에 벌여진 일이었다. 

사내는 집에 갇히게 되었다. 성 안에서는 집 밖에서 돈을 벌지 않고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남자를 남성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아내는 돈을 벌어 오지 못하는 사내를 무시했 고, 딸들은 기사가 아닌 사내의 모습을 낯설어 했다.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사내의 이름을 기억하는 가족, 이웃은 없었다. 기사가 사라지니 무능하고 늙은 사내만 남아있는 듯 했다. 사내조차도 기사가 아닌, 또 더 이상 가장이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성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성 밖에 메리가 그의 이름을 물어봐 주었다. 너덜너덜한 파란 리본이 사내에게 물었다. “성 안에서 남자 가 아닌 당신은 무엇인가요?” 

다음 날 사내의 책상에는 “난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라는 쪽지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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