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미니즘!

편집장┃민경연



 2015년 여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의 한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에서 출발한 여성혐오에 대한 논쟁이 디시를 넘어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와 포털을 휩쓸었다. 후에 불거진 파생 사이트의 과격한 성향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그들의 등장과 활동은 네티즌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소모적인 논쟁 속에 페미니즘은 오해되거나 또 다른 혐오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해와 혐오 속에서 “너 페미니스트야?” 라는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일종의 사상검증 내지는 불순분자 색출용 질문으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필자는 “너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스트인건 상관없는데 꼴페미만 아니면 돼.”, “페미니스트? 요즘 같은 여성 상위 시대에?”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차별이 존재하는 걸 알고 이게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이기에? 이 모든 말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다음과 같다. 여성 우월주의, 무조건 여성 편들기, 남성 혐오, 그리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 주장. 여기에 정확한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꼴페미[각주:1]’, ‘페미나치[각주:2]’와 같은 멸칭은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혐오를 가중하였다. 페미니즘 사상에 대해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은 지양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금부터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과실을 한 입 베어 물어보자. 혹시 모르지 않나. 더 알고 싶어질 지.


페미니즘?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직역하자면 여성주의, 혹은 여권주의라고도 불린다.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의 권리를 높여 궁극적으로 성 평등을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과 함께 시작한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 해방을 위한 실천 전략을 위한 하나의 단일한 이론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19세기부터 만들어진 다양한 사회 이론과 정치적 움직임, 그리고 문화적 운동의 집합체다. 페미니즘 ‘들’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페미니즘의 분파가 여성의 권익 신장과 가부장제의 해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같으나 그 방법론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하지만 여느 학문의 영역이 그렇듯 무 자르듯이 딱딱 나뉘는 것은 아니며 상대적이고 중층적이거나 상호융합적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19세기 계몽운동과 자유주의 사상에서 출발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사상적 토대는 테일러[각주:3]와 밀[각주:4]로 대표된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고 외적 환경이 인성을 결정짓는다는 확고한 믿음 아래 개인주의와 평등 이념에 기초한 남성과 동일한 교육과 법적․정치적 권리 및 경제적 기회를 제공한다면 남녀 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밀은 개인의 능력을 기를 기회를 가져야 하며 부르주아 계급 여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테일러는 밀에 비해 민주주의를 강조하였으나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이야기하면서도 빈곤층 여성노동자의 가사와 양육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중심 개념은 평등이다. 그 평등은 지배 엘리트 계층으로 접근하는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성과의 평등이 반드시 여성해방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회의 균등은 단지 여성들에게 남성의 조건을 일반화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주요한 지배 이데올로기 중 하나였고 자본주의에 대해 직접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역시 체제에 순응하여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제한되었다. 


급진적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이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독자적인 체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달리 가부장제 체제 전체를 문제 삼는다. 가부장제 내에서 여성들이 어머니이기를 강요당하고 있으며 성적으로 남성에게 예속되고 통제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성의 종속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자본이나 사회구조가 아닌 남성이라고 본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 변혁을 통해 여성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출산과 결혼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성적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이성애 중심의 사고를 비판하였다. 이성애 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이성애를 거부하고 레즈비어니즘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급진적 페미니즘을 급진적-자유의지 페미니즘(이하 급진-자유)과 급진적-문화적 페미니즘(이하 급진-문화)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급진-문화는 가부장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데에서는 급진-자유와 같으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성을 찬양한다. 그들은 현재의 문화는 지나치게 남성적이므로 여성의 관점으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녀의 차이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모든 여성 억압 현상을 남녀의 대립이라는 틀로 설명함으로써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또한 여성의 특징을 고정화하거나 생물학적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성별 외의 다른 억압 구조들과의 관계에 소홀하였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각주:5]는 공식적으로 여성의 해방과 노동권을 지지했지만 사회 변혁의 과제 앞에서 여성의 이익은 남성의 이익에 포함된 것으로 전제되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점에서 여성의 억압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하의 가족에서 여성의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은 임금을 받는 ‘생산적’ 남성에 비해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졌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의 일이 절하되는 것에 분노하였으며 이에 자본주의의 해체와 가사노동, 자녀 양육의 사회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 억압의 근원을 지나치게 노동이라는 단일 대상에 한정시켰고, 실제 여성 억압의 기제가 그보다 다양함을 간과하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성 역할 분업을 여성억압의 또 다른 축으로 보고 있으며 가부장제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한편 가부장제가 발휘되는 영역을 보다 확대하고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의 이론화를 위해 주력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적 ‘재생산’을 개념화하는 등 현실적 여성문제를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념화하고자 시도하였으나 이를 체계화하지 못하고 다양한 억압구조를 나열하는 데서 그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신분석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에 대한 프로이트[각주:6]의 이론은 동시대인들에게 상당한 논란을 야기하였다.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 프로이트는 여성으로서의 불만족이 차별적인 사회문제보다는 남근의 결핍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하여 여성이 결함이 있는 것처럼 표현했고,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반발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그 자체는 유용한 방법론으로 이용되었다. 정신분석 페미니스트들은 인간 성적 발달 단계의 오이디푸스 이전 시기를 강조하거나 비 가부장적 시각으로 오이디푸스기를 조명하는 등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재해석해 페미니즘을 위해 이용했다. 초도로우[각주:7]와 디너슈타인[각주:8]은 여성억압의 근원을 여성이 어머니 노릇을 독점하는 데서 찾았고, 이에 따른 문제점들의 대안으로 이원적 부모노릇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주된 여성억압의 요인을 사회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이라고 역설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여성과 남성간의 인성차이에 돌려버렸다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원적 부모 노릇 역시 남성의 역할을 증대시킬 뿐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실존주의 페미니즘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보부아르가 발전시킨 여성을 위한 실존주의에서 출발했다. 보부아르는 그의 저서 ‘제2의 성’에서 실존주의의 언어를 택하며 남성들이 자신을 자아로, 여성을 대상화된 타자로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타자가 된 여성은 그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내면에서 고착화된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주체임을 주장하며 여성도 노동에 참여하고, 스스로를 위한 지성인이 되고, 사회주의적 변혁에 참여하고, 타자성의 내면화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그 개념이 생활에서 나온 것이 아닌 지나치게 추상적인 철학자의 언어임에 비판받았다. 또한, 여성 육체를 경시한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보부아르[각주:9]가 내세우는 타자성을 받아들이되, 그 타자성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타자성은 관대함과 다원성, 다양성, 차이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그들은 라캉[각주:10]의 상상계, 데리다[각주:11]의 해체주의 등의 이론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엘렌 식수[각주:12]는 데리다가 주장한 이분법과 정체성에 관한 해체를 여성에게 적용하였다. 특히 식수는 비 존재적이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즉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하며 이것이 단순히 새로운 글쓰기가 아니라 전복적 사고를 위한 가능성이라고 표현했다. 이리가레이[각주:13]는 라캉의 상상계를 차용하였다. 그는 현재의 우리가 여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남성의 관점에서 본 것임을 지적하였고, 반대로 여성적 여성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테바[각주:14]는 ‘페미니즘’을 거부했다. 그는 대립된 성별적 차이를 거부하되 성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존재론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 수준에서만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성적 정체성을 파괴하거나 포기하는 양상들만을 지지했다. 


아직도 페미니즘이 필요해?

 과거에 비해 여성의 권리는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니 이제 페미니즘은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글쎄, 대답은 NO다. 여전히 대부분 순간에 여성은 남성적 시각으로 정의된 타자로서 존재한다. 미디어, 특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연애대상, 눈요깃감, 창녀 혹은 성녀다.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삶을 위한 가외 노동자로서 이중의 노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생산에 직접적인 결정권(예를 들어 낙태)을 행사함에 비난받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페미니즘 담론 형성기(19세기~1980년대)가 아닌 지금 현재 상황이다. 여전히 페미니즘은 유효하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페미니즘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 우선 여성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여성을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인간 주체로 봐 달라는 말이 그리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인간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여자도 있겠지. 물론 당신은 인간이다. 하지만 느낀 적 있을 것이다. 당신을 인간이 아닌 어떤 목적을 위한 존재로 보던 시선을. “여자는 애를 낳아야 하니까~”로 시작하던 일련의 문장들에서 느낀 위화감을. 여성은 자궁도, 어머니도 생식기도 아닌 단지 그 자신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서 페미니즘은 시작한다.



[참고문헌]

페미니즘 사상 –로즈마리 통

페미니즘 –제인 프리드먼

포스트 페미니즘 –소피아 포카

페미니즘의개념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민경연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봐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를..흑흑...  

 lemonamelona81@gmail.com



  1. 꼴페미=꼴통+페미니스트 [본문으로]
  2. 나치+페미니스트 [본문으로]
  3. 해리엇 테일러 밀(1807~1858) 영국의 철학자. [본문으로]
  4.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영국의 철학자. 자유주의자. 공리주의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본문으로]
  5.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인문학자. [본문으로]
  6.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본문으로]
  7. 낸시 초도로우(1944~) 영국의 페미니스트, 심리학자. 저서로 「모성의 재생산」이 있다. [본문으로]
  8. 도로시 디너슈타인(1923~1993) 미국의 페미니즘 사회운동가. 저서로 「인어와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본문으로]
  9.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가.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음. [본문으로]
  10. 자크 라캉(1901~1981)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본문으로]
  11. 자크 데리다(1930~2004)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 친구. [본문으로]
  12. 엘렌 식수(1937~) 프랑스의 여성주의 작가.ㅏ 저서로 「메두사의 웃음」이 있다. [본문으로]
  13. 루스 이리가레이(1932~). 벨기에의 철학자. 언어학자. 저서로 「하나가 아닌 성」이 있다. [본문으로]
  14.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불가리아의 작가, 평론가, 철학자. 저서로는 「한나 아렌트」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