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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섹스를 정의하시오 - 성 해방과 위험한 동행.



섹스를 정의 하시오 

- 성 해방과 위험한 동행

사무국장|박자영 



 인류의 욕망은 사회의 깊숙이 그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인류 탄생에서부터 욕망은 인류 생존 메커니즘을 작동시켰고, 욕망의 에너지는 물밑에서 사회를 구조, 유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가 지표면을 뚫는 어떠한 한계에 도달했을 때 사회의 혼란은 필연적이 다. 개방·국제화·정보화 시대라는 현대, 이 에너지는 더 이상 물밑에 있지 않고 폭발하 고 있다. 폭발하는 다양한 경로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성(性) 해방’이다. 



성에 대한 본질적 갈망 

섹시한 사람 

 인간의 성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몸에 지니는 하나의 본능이다. 성은 자 아의 일부이며 성에 대한 지식의 욕구는 자아를 알려고 하는 욕구와 같다. 이 글에서 말하는 성(性)은 성욕인 색(色) 개념과 성에 대한 태도, 관점, 신념과 같은 섹슈얼리티 (sexuality)를 포함한 개념이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에 한 근간을 이루는 성은 개인을 넘 어 인간사회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성해방 이전 사회에서는 무조건적인 성 공론화의 금지, 또한 성에 대한 지식을 비밀스 러운 개념으로 취급해 왔다. 그로 인해 성이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현상이 아닌 신성시되 거나, 불확실한 것이란 관념이 생겼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과 자아의 관계는 불 가분의 관계이다. 성과 자아의 관계를 억지로 분리시킨다면 우리는 많은 부분을 정확하 게 보지 못하고 왜곡된 지식과 시선을 가지게 된다. 

배고픈 것을 배고프다 말하지 못하고 

 사회는 성에 관하여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하나는 성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인 정하고 그 욕구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성에 대해 자신의 일부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제한하며 문제 삼는 태도이다. 전자의 태도 는 위 글에서 상술한 자아와 성(性)의 합일을 지향하는 태도이고, 후자의 태도는 성(性) 을 성욕으로 제한하여 생각하고 금욕을 강요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최근 성욕에 대한 연 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성욕이 단순히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는게 밝 혀졌다. 

 생명체는 ‘자기 생존’과 ‘종족보존’이라는 2대 목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 를 현실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생명체는 ‘식욕’과 ‘성욕’이라는 2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즉 성욕은 생존의 본능과 같은 요구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욕이 단순히 번식을 위한 기작일 뿐일까. 하지만 폐경기가 지난 여성은 사 실상 생식능력을 상실하지만 이처럼 생식능력을 상실한 여성에 있어서도 성욕은 상존하 며, 각종 성행위도 영위된다. 갱년기 이후에도 성적으로 각성하고 있으며 성교 시마다 강 한 오르가즘을 체험한다. 따라서 성욕을 단순하게 생식욕구의 충동만으로는 볼 수 없다. 성욕은 생존의 욕구와 같이 우리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까지 함께한다. 



성 해방의 이중성 

섹스의 자유를 원한다. 

성해방은 성과 비슷하게 많은 범위의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 행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사회가 성행위와 성 정체성에 대한 수세기에 걸친 독선적 태도를 단념하고 새로운 자유주의를 수용하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1950년대 이래로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성에 대한 개방성 혹은 허용성이 증가한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성적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졌다. 여성들은 피임 도구를 값싸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임신과 성을 분리시킬 수 있었고, 그 밖에 도 혼외정사, 이혼, 자유로운 성행위, 피임의 대중화, 성 관련 서적과 영상물의 검열 완화 등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했다. 성(性)이 사회에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상업적으로 제조된 성의 혁명 

성에 관해 개방성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양날 의 칼과 같다. 성행위를 임신과 분리함으로써 여성이 단순 인구 생산 도구에서 벗어날 수 있 게 하는 동시에, 브라운관에서는 여성과의 성 행위를 상품화하는 성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성(性)은 대중문화의 중 심 요소가 되었다. 영화에서부터 패션 산업, 그 리고 서적과 잡지에서부터 신문과 음악까지 성 적으로 변했다. 성 관련 좌담과 기사가 나오고 , 내용은 놀랄 만큼 단시간에 ‘솔직하고 적나라 하게’ 되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매 체는 성 욕망을 창안하고 제조해냈고, 자본주 의적 질서로부터 소비주의로, 더 나아가 쾌락주의를 조장했다.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는 성적 정체성을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종이와 매체 를 통해 ‘재현된 성’의 이미지를 얻었으며 이들의 성(性)은 앞 세대의 성(性)과 같을 수가 없었다. 즉 그 시기의 학습된 성은 플레이보이의 여자와 포르노 속의 남자였던 것이다. 

자아의 성으로 가는 길은 멀고, 재현된 성으로 가기는 가깝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재현된 성(性)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성(性)에 대해 사색과 정의 를 내리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많이 늦었다. TV 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이 돌아 가는 선정성 광고와 인터넷의 보급 이후로는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음란물이 유포되었다. 성해방을 통해 성(性)이 공론화되는 물꼬를 텄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교육, 그리고 태도는 성이 자아의 일부분이라는 것도 동의를 구하지 못한 단계였다. 성 (性)을 정의하지 못한 개인이 무분별한 성욕, 쾌락에 노출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성냥을 장난감으로 준 것과 같았다. 



재현된 성은 브레이크가 없다. 

음란물 

대부분의 음란물은 일반적이고 공공연한 성교, 예를 들어 부부간의 성교를 내용으로 하지 않는다. 이는 음란물이 1960년대 이후 자본주의적으로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이다. 음란물은 좀 더 괴팍한 장면, 이상한 시나리오 파격적인 카메라 워킹을 시도한다. 그 결 과 우리는 인간이 좀처럼 행할 수 없는 기예와도 같은 성교 장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 문 제가 되는 점은 성 상품화가 이뤄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교와 육체적 성기의 의미로 제한된 재현의 성(性)만을 접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담사례에서 “잠자리에서 자극을 줄 요량으로 야한 동영상에서 본 벨트로 때리는 행위를 거부하는 아 내에게 했다.”라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음란물은 성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킨다. 

성매매 

성매매는 상업적 성교를 매매의 대상으로 한다. 성교를 안마나, 물리치료사와 같이 육 체의 만족을 위한 서비스로 봐야 하는 걸까? 그러나 성교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인 간관계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性)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아를 구성하는 근간 이다. 성교는 자아의 한 뿌리가 되는 성(性)을 교류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가장 순수한 교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매매에서 성(性)의 정의는 재현의 성(性)과 같이 성교와 성 기만을 의미한 제한된 정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교를 제공하여 경제적 대가를 취하거 나, 생존을 영위하는 행위는 직업적 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인간성의 상업화이다. 성 해 방의 의미가 퇴색된 이후, 시류에 편승하여 성매매의 합법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 다. 하지만 육체적인 성의 의미만 뜻하는 성 개념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꽤 위험한 발언이다. 


섹스에 대해 정의하라. 

“저 연예인 너무 섹시하다. 같이 자 봤으면!” 

“섹스할 때는 엉덩이가 제일 중요하지.” 

현대 사람들은 성(性)에 대해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성(性), 섹스에 대해 정 의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선뜻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일상적으로 ‘섹시하다’ 는 말이 단순히 신체적인 의미, 성교의 의미에 제한된 ‘재현의 성(性)’인 것을 이제 이 글 을 읽은 당신은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성(性)은 자아의 근간을 이루는 한 부류이다. 제 한된 정의에서 머문다면 성의 공론화는 욕망을 위한 변명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렇 게 되면 필연적인 성욕의 직면에서 인간은 그들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아와 괴 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성해방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남성의 시선과 결혼 이 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성적인 욕구, 신체적인 성(性)을 상품 화하여 성(性)에 대한 정의를 제한시킨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인한 부산물은 아직도 잔존 하여, 성해방에서 물꼬가 트인 성 공론화에 ‘무분별한 욕구의 남용’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성 상품화 그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그로 인한 자아의 성과 재현된 성의 괴리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 괴리로 인해 사람들은 매체가 주입시킨 가상의 성에 갇힐 수 있다. 재현 된 성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시키기 충분하고, 중독된 성 개념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아의 성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아와 합일을 이루는 성에 대한 정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본질은 내 자아의 뿌리 속에 분명히 내재된 성(性)이 있다는 것이다. 성(性)에 관한 철학적 탐구의 시발점은 바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치는 망각된 ‘재현의 성’을 환 기하는 것이다. 바로 성(性)의 일상적 개념을 전도시키고, 우리 내면의 성(性)의 의미를 사 색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개인의 자아에 내재된 성(性)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참고문헌] 

『알고 싶은 성, 알아야 할 성』 편집 정길생,-집필 강영계 외 12인 

『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권태영 지음 

『성 해방과 성 정치』 조은, 조주현, 김은실 



박자영 

섹시한 사람 

foxgirl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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