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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안 들키면 그만 아니냐?" -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안 들키면 그만 아니냐?”

―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의문의 질문쟁이




※ 이후 등장할 캡쳐 화면은 실제 대화 내용을 재구성 한 것으로 부분 추출, 익명화 작업 이외에 일체의 편집이나 수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알립니다.


 일명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남자들의 단체 톡방.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들어보거나 접해 봤을 것이다. 과연 떠도는 말처럼 ‘판도라의 상자’가 맞을까? 그런 상자가 있다 치자. 상자가 열렸을 때, 우리는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또,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상자. 연 사람이 잘못일까, 만든 사람이 잘못일까?


 2013년 5월 본교 모 학과.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같은 학번 열일곱 명의 남학생들로 이루어진 단체 톡방. 그 안은 게임, 축구, 온갖 과제와 대학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빼놓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성별을 떠나 지극히 당연한 대화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했다. 불특정 다수 혹은 특정 인물들을 향한 성희롱 발언, 몇몇 여성 동기에 대한 서슴없는 외모 비하, 공공연한 ‘몰카’ 행위, 다수의 여성을 겨냥한 혐오성 발언. 모두를 아우르는 대화 내용들과 함께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함께 웃는 사람들. 이걸 단순히 열지 않아야 할 ‘상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해당 톡방에 대한 이야기가 암암리에 퍼져 나간 건 2013년 당시였다. 그때만 해도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였다. 이듬해 2014년까지만 해도 위축된 피해자들은 스스로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는 몇몇 피해 학생들은 휴학, 자퇴, 전과 등을 선택했다. 가해자 학생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대략적인 내용을 인지하고 방관을 택한 학생들도 많았다. ‘모른 척’이 만연한, 일명 ‘목소리가 큰’ 학생들만 두드러진 분위기에서 소수의 피해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었다.

 공교롭게도 2015년, 같은 학과 내부에서 교수-학생 간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책임을 통감한 여타 교수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했다. 학과장을 필두로 학생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문제의 단체 톡방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작은 창안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쉽사리 입에 올리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수였다. 주요 가해자는 서너 명 남짓이었으나 모두 함께 웃고 떠들며 동조했다. ‘대화 내용이 퍼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친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는 내부 제보도 있었다.




 톡방 안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걱정하던 그들은 ‘섹스’라는 단어를 내부적 동질감을 다지는 확인도장마냥 사용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논란이 된 이후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분명한 사과를 건넨 적이 없었으며 여전히 웅크린 쪽은 피해자였다. 


 그들의 대화 내용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피해자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피해자 세 명이 두드러진다. 처음 사건을 접한 여학생 중 한 명은 잦은 성희롱 발언과 ‘몰카’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이어 내용을 접한 두 번째 피해자는 자연물에 빗댄 지속적인 외모 비하 및 성희롱의 대상이었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대두한 이후에서야 그 내용을 알게 된 세 번째 피해자 역시 지속적인 외모 비하, 직접적인 성희롱 발언 및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식이 장애, 수면 장애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 및 가해 발언은 한데 모아 사진으로 첨부한다.



□□: 주요피해자1 

■■: 주요피해자2 

○○: 주요피해자3

◇◇: 사건이 알려지기 전 자퇴한 또 다른 피해자


1. 성희롱 및 외모 비하 발언



2. 몰카’의 흔적



3. 성희롱 및 외모 비하 발언



 이 같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해당 학과의 대처는 다소 모호했다. 상당수의 가해자가 군인의 신분이었음을 감안해 한동안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을 고려하는가 하면, 남아있는 가해자에게도 ‘휴학 권고’가 떨어졌을 뿐이다. 정신적 충격과 두려움에 빠진 피해자와 같이 수업을 듣지 않도록, 그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학교를 쉬라는 ‘제안’이었다.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는, 그야말로 권고 수준이었다. 애초에 주동자 네 명은 자퇴 및 반수로 일찍이 학교를 벗어났고 많은 이들이 군 복무 중이었으므로 남아있는 대부분의 가해자는 이를 자의 반 타의 반, 받아들이게 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제안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이가 있었다. 교내 신문사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B군은 학군단 활동을 명목으로 이 같은 권고를 거절했고 교내 성희롱, 성폭력 조사위원회로 사건이 넘어갔다. 이어 ‘무기정학’으로 징계가 떨어진 데 반발한 그는 학교를 상대로 몇 가지 소송을 제기했다. 취재과정에서 B군의 소송 판결에 따라 전역한 몇몇 가해자들의 복학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는 내부 제보가 상당수 존재했는데, 그 첫 번째가 기숙사 건이었다. 징계를 받은 학생에게 기숙사를 내어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그는 패소한다. 무기정학과 관련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며, B군은 기소유예 상태로 계속 학교에 나오고 있다. 이후 이어질 재판은 졸업을 위한 담당 교수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이후 세 번째 피해자의 집으로 그의 어머니와 이모가 찾아가 협박을 가하기도 했는데, 현재 가해자 B군은 해당 피해자와 태연히 함께 수업을 듣기도 해 충격을 자아냈다.  



 한편, B군을 포함해 학교에 남아있는 몇몇 가해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소위 ‘주동자’들이 모두 학교를 떠나 ‘방관한 죄’밖에 없는 그들이 죄를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같은 학과 혹은 이 소식을 접한 타 학과 학생들의 견해도 여러 가지로 갈린다. 개중에는 톡방의 내용이 퍼지지만 않았다면 별문제가 없지 않았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남자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들킨 게 재수가 없었다’ 등의, 판도라의 상자를 연 사람이 잘못 아니냐는 주장도 상당수였다.

 특정성별만 모인 대화창에서 다소 수위 높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들키지 않으면 괜찮지 않냐’, ‘실제 행동에 옮기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냐’는 등의 방패를 쥔 채로 온갖 수위를 넘나드는 일은 분명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직접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해’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사건 발생 초기 ‘누가 내용을 유출 시켰나’ 등으로 논제가 흐려지기도 했으나 역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은 따로 있다. 열일곱의 남학생 중 정말 그 누구도 진지하게 문제 있는 발언이라 생각지 않았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아무도 직접적으로 반박하거나 말리려 들지 않았을까? 어째서 상처받은 그 누구도 사과받지 못했을까? 그들의 대화에서 ‘여성’으로 포괄되는 인물들은 왜 어떤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었을까? 

 끝으로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사람들은 과연, ‘가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 피해자, 내부제보자, 가해자 등의 신분을 최대한 감춰야 했기에 관련 제보 및 취재 출처를 명확히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