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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독립에 대하여"

"독립에 대하여"

(※본 기사는 두 개의 글로 이뤄져 있습니다.)




텅 빈 방


수습위원┃백주원


 난 지금 혼자 살고 있다.


 난 늘 누군가와 함께 생활해왔다. 어릴 땐 집에서 가족과 살았고 대학교에 입학해 갓 상경했을 땐 성림학사 4인실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입대 후에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선후임들과 한 방을 썼다. 전역 후 복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23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혼자 살게 된 것이다.

 그 동안 타인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동거하며 참 많은 갈등이 있었다. 방 좀 치우고 살아. 옷 좀 제대로 벗어놓지 그래? 게임 좀 그만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들은 부모님의 잔소리 횟수는 대체 몇 번이나 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벗어나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해도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털털한 룸메이트와 방을 쓸 때는 날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져 가는 방 상태를 보며 한숨지었고, 반대로 예민한 룸메이트와 방을 쓸 때는 사람이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알람 소리를 최대한 작게 설정해놓아도 그의 심기를 거슬렀고(그래서 결국 폰 알람을 진동으로 바꾼 후 베개 밑에 넣고 잤다) 밤에 게임할 때 헤드셋을 쓰더라도 키보드 타닥타닥 소리 때문에 분노한 그와 싸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입대 후 자대에 배치 받았을 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난 그 이상을 겪어본 것 같다.

 이때까지 공동생활을 하며 삐걱거렸던 적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꼭 혼자 살아 보고 싶었다. 혼자 잘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해줘도 난 자신 있었고 실제로 잘 지냈다. 깨워주는 사람 없이 혼자 잘 일어나고, 혼자 밥 잘 챙겨먹고, 빨래, 청소, 아르바이트 빠지는 거 없이 혼자 척척 처리하고. 완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안정적으로 자취 라이프를 즐겨온 것 같다. 그렇게 나 혼자 살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자유를 만끽해왔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외롭다는 게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룸메이트와 함께 살 때도 혼자 방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혼자 생활하는 것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혼자 사는 건 확실히 또 달랐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다녀왔습니다 인사 한 마디 받아 줄 사람도 없고, 주말에 집에만 있노라면 하루 종일 혼잣말 외엔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특히 일상에 지치거나 혹은 아플 때 텅 빈 방을 보고 있자면 서글플 때도 많았다. 한 번은 몸살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땐 일어날 힘도 없어서 반나절을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누구한테 부탁해서 죽이라도 사 달라고 싶었는데 부탁할 사람도 없으니 그 마저도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 겨우 회복된 체력으로 몸을 추슬러 근처 편의점에서 감기약이랑 죽을 사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는 그대로 녹다운 당해서 침대에 쓰러졌다. 음, 지금 생각해도 괜히 기분이 꿀꿀해지는 그런 경험이다.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더 외롭고, 서글펐고, 우울했다. 사람에 치여 우울한게 아닌 혼자라서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둘이서 자취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그대로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각자 성향의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문제점들. 하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나중엔 일명 개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더라도 생활공간을 같이 쓰게 되면 결국 각자 희생하고 양보해야 할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둘이 살다보니 진짜 불편해! 나도 혼자 살고 싶어.”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역시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위안하지만 그러면서도 최소 외롭다고 느낄 일은 없을 거라는 점에 아주 약간은 그 친구가 부러워지곤 했다. 

 만약 누가 나에게 혼자 사는 것과 같이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냐고 묻는다면 난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유대감과 편리함 중 그래도 아직은 혼자 사는 것의 편리함에 더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독립했을 때와 오늘날을 비교해보면 두 가치의 무게를 재고 있는 천칭의 기울기가 점점 수평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혼자 살다보니 외로움에 지쳐 무의식적으로 마인드가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

 세상에 누구하나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각자 느끼는 외로움의 정도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래도 한솥밥을 먹고 저녁에 돌아왔을 때 어서 오라는 한 마디 해줄 사람과 함께 산다면 그 외로움도 약간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내 방엔 나 혼자다. 텅 빈 방에서 나 혼자 키보드를 두들기며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면서 써 내려간 글은 이만 줄인다.



백주원

bjw941229@naver.com

오랜만에 들어봤습니다. 오늘도 나 혼자 우→우↘우↘우↗우↗우→우↘♪♬




나 혼자 산다


사무국장│박자영


 언제나 나는 작은 독립투사였다, 물론 일제 강점기 국가의 해방을 꿈꾸며 동경으로 유학을 가셨던 선조들과 같은 무거운 책임의식을 지는 투사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독립=상경!’이라는 목표의식으로 고등학교 시절 공부 투쟁을 했다. 독립이라는 건 단순히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 삶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대학을 선택할 때도 다른 무엇보다 고향 집에서 가장 먼 곳을 찾기 바빴다. 그 결정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부모님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나의 대의적 명분에 걱정은 하셨지만 반대를 하진 않으셨다. 결국, 난 그 목표를 이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표를 혼자 끊는 내 모습에 심취해서 ‘우와 진짜 어른이 된 거 같다’라는 간질거리는 감정에 몸부림쳤다.

 혼자 집안일 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집에 매일 밥통을 열어보면 있던 쌀밥도 하다못해 집 밖에 나가 햇반을 사서 돌려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을 알았을 때 굶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자취를 하면서 위가 제일 먼저 고장이 났다. 한 달마다 오는 생활비가 늦춰질 때면 햇반도 힘든 생활이 피를 말리게 했다. 마지못해 부모님에게 안부전화가 아닌 생활비를 보내달라는 간청을 할 때면 이게 정말 독립이 맞던가... 라는 회의가 몰려왔다. 결국, 나는 경제적 독립을 장엄하게 선언하고 아르바이트를 학기 중에 2개를 뛰면서 생활비와 방세를 스스로 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지만 월말 마다 들어오는 생활비를 모아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할 때 해냈다! 라는 성취감에 또다시 간질거리는 감정이 들었다. 많이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 보상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에 한껏 당당해졌고, ‘나도 이제 내가 가는 여행길을 선택할 수 있구나.’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나씩 이뤄나갈 장밋빛 미래 생각에 몸이 구름 위를 둥실거릴 때쯤. 장엄하게 두 번째 독립 선언을 부모님에게 통보했다. 저는 결혼을 하지 않겠어요! 

 그 선언이 부모님에게 큰 상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결혼 생활을 부정하는 말 정도의 배신처럼 여겼다. 부모님에게 딸의 독립은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머금고 ‘내 딸을 잘 부탁하네.’라며 신랑의 손에 딸의 손을 쥐여줄 때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를 결혼식장에서 다른 책임자에게 넘기듯이 그렇게 자신의 손을 떠나는 것이 나의 독립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에게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가 까지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나도 무작정 하나의 성인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생각해보면 나의 독립은 어디로부터의 탈피였다.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탈출, 그리고 부모님 돈으로부터의 탈출.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독립이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그런 반항심에서 튀어나온 생각일지도 모른다.

 독립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필요가 있었다. 국가의 독립은 잃어버렸던 주권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국가 독립의 개념을 확장하여 개인의 독립을 정의한다면 개인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개인의 독립이라고 표상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개인의 주권이란 그럼 또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넓은 의미의 독립에서 그 의미를 추출해 본다. 독립 후 국민으로 이뤄진 정부가 나라를 이끄는 것처럼 개인의 목소리가 가장 존중되는 결정을 내려 장래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주권을 회복한 상태라고 주관적으로 정의했다. (이미 주권을 회복한 거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정의를 내렸는데 열반에 도착하지 못하고 나는 또 방황하고 있다. ‘아니 이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면 되는데 왜 그러는 거야!’ 라고 답답해할 때쯤. 기본 전제인 개인의 목소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 상태에서 진로를 선택할 때 기준이 나 자신한테 맞춰져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애초에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자아에 그 기준에 맞춰서 다음을 정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무조건 이미 정해진 기준을 따르거나, 아니면 반항심에 반대로 가거나 둘 중 하나였던 어린애에게 부모님이 불안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리저리 뱅뱅 도는 나침반을 들고 항해를 하는 꼬마 선장을 보는 느낌이었을까. 

 자아 탐색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기도 하고, 내가 잘하는 것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어떠하랴 이제 겨우 튜토리얼에서 게임의 진행방식을 이해한 초보자에게 나름의 큰 한 발자국이 아닌가. 느리게 파악하는 것도 아쉽지만 ‘나’의 일부분이고 그리고 굼뜬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무슨 일이든 힘이 들어가 있는 것도 ‘나’이다. 자의식 과잉인가? 라는 생각에 외면하다가도 결국 같은 고민에 당착하게 되는 고민쟁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박자영

foxgirl10@naver.com

생각이 많을 땐 당분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