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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헬조선의 청년정치-투표가 그렇게 중요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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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청년 정치

투표가 그렇게 중요하다며?

편집위원│한승이

 


20대 개새끼론

2016년 4월 13일 수요일은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이다. 매번 그렇듯이 이 시기쯤 되면 여기저기 띠를 두른 사람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거나, 시끄러운 음악과 구호를 동반한 선거용 차량들이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선거 관련 기사들이 메인에 뜨기 시작한다. 기사에서 자주 문제 삼는 것 중 하나는 ‘청년들의 투표율 저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장 잘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투표이다. 그 외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 방법에는 시민 단체 활동, 정당 가입, 대중 매체의 활용 등이 있지만 투표는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나의 대표자를 고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승한 이후로, 20대의 투표율이 저조해서 보수가 이긴 거라며 많은 사람들이 20대를 비판했다. 또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 당이 압승하자 20대 투표율에 관한 루머가 엄청나게 유포되었다. 20대 투표율은 27%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여성 투표율은 8%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말 그럴까?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자료에서 20대 투표율은 전반, 후반이 45.4%, 37.9%로 떠돌던 수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군다나 20대는 직전인 18대 총선에 비해 투표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였다. 또한 여성 투표율도 전반이 40.4%, 후반 39.5%로 높았다. 게다가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여성 투표율은 동일 연령의 남자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로 모든 선거에서 여성보다 남성 투표율이 높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통념과는 다르게 2000년 대 후반에 오히려 20대와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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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요즘에는 정치건 사회문제건 젊은 애들이 관심이 없어서 큰일이야.....점점 이기주의로 변해가고 말이야,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기성세대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투표율이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20대의 투표율은 50대, 흔히 말하는 486 세대보다 낮다. 물론 20대의 투표율은 언제나 5,60대보다 낮았다. 그건 현 20대를 비판하는 486세대들이 20대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이었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세대로는 일반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대는 왜 비슷한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로부터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듣는 걸까?

 

‘먹고 살기 바쁨’로 표현되는 세대

각 개인은 정치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정치 정향을 가지게 된다. 정치 정향은 특정한 정치 체제, 혹은 정치 체제 내의 특정한 어떤 것에 대한 개인의 태도, 관점을 말한다. 그래서 한 개인이 가지는 정치 정향은 다른 세대보다는 같은 세대에서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시기의 정치, 사회적 경험을 통해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후로 짧은 시기 내에 많은 정치, 경제적 변동을 겪어왔다. 따라서 세대 간의 정치 정향은 더욱 달라질 수밖에 없고, 한 세대는 그들을 표현하는 특정한 프레임을 갖기가 쉬워진다.

지금의 20대는 정치사회화 과정에서 3가지 중요한 경험을 겪었다. 첫 번째로, 청소년기에 IMF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둘째, 사회 진입 단계에서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 환경에 있다. 셋째, 486세대같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대와는 달리, IMF 이후로 급속하게 진행된 공동체 붕괴로 인해 현재 20대들은 연대를 통해 체제에 저항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IMF가 문제네

IMF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이후 발생한 장기불황과 자본의 불평등 분배와 같은 문제는 사람들 간의 무한 경쟁을 불러왔고, 486세대들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때의 경제 성장기와 달리 지금의 청년들은 당장 거리에 나가 문제점을 토로하기 보다는 취업을 위해 자기계발, 스펙을 쌓는데 열중해야 했다. 그래서 그 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다. IMF를 청소년기에 겪은 20대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높은 물질주의 성향과 가장 낮은 탈물질적 성향을 보여준다. 20대는 4-50대보다도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부모가 겪는 불안정하고 반복되는 경제 상황을 겪었다. 그래서 20대는 자신의 경제적 생존에 직접 도움이 되는 물질적인 안정에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다. 이런 경험과 동시에 사회 진입을 어렵게 하는 고용 불안은 더더욱 물질적인 성향을 높인다. 또한 20대는 가장 낮은 탈물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탈물질 가치는 물질적인 안정 외에도 다른 관심을 추구하게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정치가 될 수 있다.

 

낮은 정치 효능감

이런 반복된 경제적 위기를 겪은 20대들은 다른 세대와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족의 경제적 위기를 느끼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회에 만족하지 않을수록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통상적으로 크지 않을까. 많은 20대들이 지금의 사회를 엎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왜 가장 낮은 정치 참여도를 보일까? 그건 지금의 20대들이 경제위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그로 인한 좌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적 좌절의 경험은 개인의 정치적 효능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정치적 효능감은 정치적인 행위자로서 개인이 정치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정치 효능감이 낮으면 정치 신뢰도에 관계없이 사회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에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의 사회체제에 문제의식이 있지만, 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무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20대가 사회문제에 대해 개인주의적인 대응을 하게 만든다.

실업률은 IMF 이후로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상당수를 차지한다. 나 하나가 투표를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복잡하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현실 정치보다는 취업 시기에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 교육, 경험의 부재

20대인 필자는 중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삼권분립 이외에, 정치가 무엇이고 왜 중요하며 그게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사회, 문화 분야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야당과 여당의 구분도 정확히 못했다. 물론 본인이 평균치의 이하일수도 있지만, 우리 세대는 확실히 정치에 대해 어떤 특정한 사건을 겪거나 정치에 관해 교육받은 세대가 아니다.

그러나 예전의 486세대들은 민주화를 이룬 주역들이다. 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운동을 직접 하던, 지켜보기만 하던 20대들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정치가 삶에 들어와 있었고 개개인은 정치 정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체제에 반해 집단적으로 뭉쳐 어떠한 성과를 이루어낸 세대들은 정치 효능감이 굉장히 높다. 이런 정치 효능감은 시간이 흘러도 정치 참여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반면 현재 20대들은 IMF 이후로 집단적으로 연대해 저항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다. 연대 경험뿐만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20대는 ‘취업을 위한’ 공부 외에 다른 관심은 지양되도록 자라온, 주입식 교육의 세대다.

 

악순환의 반복

문제는 단순히 20대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 청년들의 고통이 국가로부터, 혹은 정치로부터 적절한 정책적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청년들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을 제정하는 국회 내의 연령층은 대부분 486세대라는 것도 큰 몫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청년들의 문제는 사회 구조상의 오직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되어왔다. 최근에서야 청년문제가 그나마 이슈가 되고 있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은 청년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노동개혁 법안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하기 위해서, 기업들의 노동비용을 절감시켜주기 위해서, 청년 문제를 이용하는 모양새다. 정부 정책대로라면, 20대들은 직업의 질을 따질 여유가 없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은 결국 20대들의 정치효능감과 동시에 시민의 역할까지 축소시킴으로써, 국가와 정치로부터 어떤 정치효능감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로써 청년들이 투표할 이유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실버라이닝:엑셀시오르!

하지만 다행이도 2007년 광우병 사태의 촛불 시위 이후로 청년들의 정치 효능감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급격히 증가한 투표율도 그렇고, 2002년 조사 당시 대학생의 정치 효능감이 45.4%인데 비해 2012년의 조사 결과 61.7%에 다다랐다. 또한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규정지었던 ‘삼포세대’라는 말에 비하면 ‘헬조선’은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현재 사회세태를 표현한 말로써 의미가 있다. ‘너도 나도 한 방 죽창’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기성세대의 요구에 동참해주기를 바라거나, 그것이 아니면 20대를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기성세대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어렵겠지만 그렇다. 그러려면 20대들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청년 정치인을 당에 유입시키기 위한 정당제도 마련, 제대로 된 정치 교육 마련, 불평등한 소득 분배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제도 마련 등이 필요하다. 물론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20대들 사이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고, 돈이 없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왜냐면 돈이 없고 바빠서 투표를 하지 못하거나, 취업하기도, 먹고 살기도 힘든 것은 결국 사회 구조의 문제고, 정치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승이

seang0449@gmail.com

정치는 어렵고 크지만은 않습니다. 투표는 기본권입니다.

그 왜 유명한 말 있잖아요. 무효표도 표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