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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관람석도 금좌석, 흙좌석?!

 

 


영화 관람석도 금좌석, 흙좌석?!

 

편집위원|김지연


 

비행기는 일등석, 영화관은 프라임존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봄기운이 완연하던 때 황당한 뉴스를 접하게 됐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좌석 차등제를 시행했다는 소식이었다.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슬로건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는 CGV의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아 박수가 절로 나왔다. CGV의 좌석 차등제란 일정 좌석들을 각각 이코노미존, 스탠다드존, 프라임존으로 구별해 각자 다른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주말 기준으로 스크린과 가까운 앞쪽 좌석인 이코노미존은 이전보다 천 원이 싼 9,000원, 뒤쪽 좌석인 프라임존은 11,000원이다. 이들의 중간 좌석인 스탠다드존은 기존 가격과 동일한 10,000원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편한 좌석은 비싼 가격으로, 반대로 영화 보는데 불편한 좌석은 더 싼 가격으로 설정함으로써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CGV는 말한다. 하지만 좌석 배치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목적이 무색해진다. 비행기 좌석을 예로 들면 제일 비싼 일등석은 그 수가 가장 적고 가장 싼 이코노미석의 좌석이 가장 많지만, CGV 좌석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여론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CGV 대신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를 선택하자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시네마도 배신하고야 말았다...)

잊지 말자, 비행기는 가장 적은 좌석을 가진 일등석이 그리고 영화관은 가장 많은 좌석을 가진 프라임존이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용산 CGV 1관 좌석표> 

 


CGV가 내놓은 새로운 가치제안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 대학생들의 문화 및 여가 생활 중 ‘영화 보기’가 상위권에 위치하는 만큼 이번 CGV 정책과 관련해 한 번쯤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우선 좌석 차등제를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중 가장 먼저 실시한 CGV는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제안’을 내놓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학기에 들었던 마케팅 수업 중 배운 내용을 기억 저편에서 살포시 꺼내보았다. 덕분에 지난겨울부터 책장 속에 잠자고 있던 전공 서적도 찾아보았다.

마케팅에서 가치제안이란 브랜드 포지션의 근간이 되는 혜택들의 조합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왜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고객의 질문에 대한 해당 브랜드, 회사의 대답인 셈이다. 보통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가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늘어나야 한다. 만약 CGV가 기존의 가치제안을 따랐다면 가장 비싼 프라임존의 좌석을 구매한 고객들에게는 가격을 올린 만큼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CGV는 새로운 가치제안을 만들었다. 가격은 올리되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 (어쩌면 유지라도 시켜줘서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주머니는 더 두둑해진다

이렇게 CGV는 기존 가치제안을 허무는 새로운 제도, 좌석 차등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가치제안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기존의 가치제안을 허무는 제도인 만큼 그 결과, CGV의 이후 수익이 궁금했다. 보통 소비자를 고려하지 못한 제도를 시행하면 그 여파가 수익 감소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시 CJ 계열사 CGV가 이례적으로 매출이 크게 떨어질까 하는 생각에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다. 아무리 CJ 재정이 탄탄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아 매출이 떨어진다면 이 제도를 다시 고려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역시 CJ는 대단했다. 가치제안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도 모자라 부정적 여론에도 수익은 작년과 비교했을 때 증가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관객 수(작년:1,132만 올해:1,126만), 매출액(작년:897억 원, 올해:898억 원) 그래프. 2016년 3월 기준>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CGV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126만 명, 극장 매출액은 89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관객 수는 6만 명 줄었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1억 원 증가한 수치다. 1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곤 CGV가 좌석별·시간대별로 관람료를 세분화한 것뿐이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CJ CGV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3,143억 원, 17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2%씩 증가했다.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메르스 기저효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흥행, 3월 좌석 차등제 도입 영향으로 인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급증할 것이라는 증권 연구원의 예측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매출 증가 원인에 좌석 차등제가 있다는 점이다.

CGV가 좌석별 가격 차등제를 발표하자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증가했으리라 생각했다. 솔직히 별다른 서비스 개선 사항 없이 좌석 가격만 올린 셈이니까. 그러나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롯데시네마가 CGV와 같은 길을 걷겠다는 뉴스였다. 결국, 지난 4월 말, 롯데시네마는 좌석 차등제 대신 주말과 프라임 시간대 가격을 차등적으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덕분에 그 시기에 개봉한 마블 영화를 예매한 나와 친구는 예전보다 비싸진 영화 표 가격에 팝콘 세트를 포기해야 했다. 이쯤 되면 CGV가 우리나라 영화관 사업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영화관에 나타난 메뚜기를 아시나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메뚜기는 유느님이 아니다. 좌석 차등제가 시행된 이후, 싼 표를 끊고 비싼 좌석에 앉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메뚜기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메뚜기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이와 관련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넓은 상영관에 영화 관람객은 4명만 앉아 있었다. 그중 한 관람객은 이코노미존 표를 샀지만 비어있는 프라임존 좌석 중 한 곳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했다. 즐겁게 영화를 보고 있던 도중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극장 직원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와 관람객들의 좌석을 일일이 확인했다. 마치 기차 역무원이 승객들의 표와 자리를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메뚜기처럼 자리를 옮겼던 고객은 직원에게 들켰고 이에 직원은 매표소에서 추가 결제를 요구했다. CGV 측은 추가 결제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직원이 점검 차원에서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해당 고객에게 제자리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고 그 고객이 추가 결제를 하겠다고 한 것이라 밝혔다.

이러한 메뚜기족 때문에 영화를 보기 힘들다는 불평도 있다. 상영관의 불이 꺼짐과 동시에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한 관객들의 움직임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메뚜기족에 대한 CGV의 입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좌석 차등제 시행 전에도 메뚜기 족이 있었고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현시점에도 메뚜기족과 관련된 불만 사항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덧붙여 자리를 이동하는 고객을 감시하거나 해당 고객에게 추가 가격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명 불편함을 말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CGV는 고객들의 불만 사항이 없다고 하며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너무 좁은 선택폭

모두가 알다시피 CGV는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다. 즉 대부분 영화관이 CGV라는 것이다. 우리 학교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CGV는 눈에 띄지만 다른 두 멀티플렉스, 특히 메가박스는 찾아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처럼 다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도 편의성이 높은 게 CGV뿐이다 보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적어진다. (고를 수 있는 영화관이 세 곳뿐인 것도 적지만...) 그리고 아이맥스는 유일하게 CGV만 갖고 있어서 이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CGV로 가야만 한다. 거의 독과점과 다를 바 없는 현재 상황 때문에 위에서 소개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CGV가 좌석 차등제로 인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어도 매출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전국 최다 멀티플렉스를 보유함과 동시에 좌석 차등제로 인해 전보다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결과를 눈으로 보고도 이 영화관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

 




김지연

롯데시네마 좋아했는데... 너도 친구 따라 가격 올렸더라? (배신감)

메가박스야, 어딨니 내목소리 들리니?

difwkd9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