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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특별기획-살아남기] 문창과에서 살아남기


문창과에서 살아남기

편집위원 | 강연주


누가 살아남는가 

  

 대학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필수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을 짚어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지금 내 생활의 모든 원인이 거기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문예창작학과 학생이 되었더라면 2학년이 다 끝나가는 요즘까지도 부서진 이상향에 대한 박탈감에 쫓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서 예술학과 진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굳이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릴 만한 것들, 주변 친구들과 다른 준비를 하기에 오는 외로움이나 쉽사리 입시상담을 해주지 못하시는 선생님들, 모든 수험생이 갖는 불안함이나 언제 끝날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피로함 따위의 것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흘렀고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견디는 것뿐이었다. 진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두운 시간을 거쳐 어떻게든 대학생이 되었으나, 그걸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나와 같이 고통받는 친구들의 모습이 아니라 이 고생 끝에 내가 그토록 원하는 길이 있다는 믿음에 있었다. 진짜 힘들 땐 주변을 살피며 비교할 기운조차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잔디밭에서 야외수업하며 시상을 떠올리는 것 따위의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올드하고 딱딱하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을 공부하러 대학까지 온 전국의 학생들과 함께 모일 때 느낄 수 있을 분위기 정도는 꿈꿨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좀 많이 바랐던 것 같다. 속이 좀 쓰리겠지만 솔직한 충고가 오가는, 열정이 넘치는 합평시간은 굳이 꿈꿀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고등학생 때 섬 생활 같은 입시를 겪었기에 공통된 관심사와 엇비슷할 꿈을 가진 공동체에 더 큰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약 내가 이년 전의 내게 딱 한 마디 전할 수 있다면, 헬스장 열심히 다녀라, 책 더 많이 읽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깨에 힘 좀 빼라고 하고 싶다. 바라던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생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충만한 생활 역시 아님을 나는 좀 알 필요가 있었다. 

 내 입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심지어 내가 합격증을 받아냈을 때조차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나는 그것들에 상처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금 즐기기도 했다. 지금 나는 그 근심 어린 시선들에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 점이 내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든 부분이다. 이해보다 몰이해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나까지 내 선택을 못 믿는 것은 정말 못 할 짓이다. 나처럼 간절히 원했든 문창과의 존재조차 몰랐든, 내 위에는 우리 학과 창립 이래로 적지 않은 선배들이 있고 고등학교 한 반 정도를 웃도는 동기들이 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입학할 후배들이, 어쨌거나 있다. 아무것도 몰라서 꿀 수 있었던 꿈속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가


 동기를 비롯한 선, 후배들이 문창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물론 이건 절대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남는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는 단어로, 내게는 계속 생을 잇기 위해 무언가와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문창과생들은, 우리는 도대체 무엇과 싸우고, 어떻게 이겨내는가.




 과제와 시험은 물론 모든 대학생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창작하는 것과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 따지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이 있을까. 여타 다른 교양과목을 들었기에 창작 과제가 훨씬 어렵다고 떼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학교에 머문 시간이 늘어날수록 시험 기간의 존재가 투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과제는 학기 내내 산발적으로 흩어져있고, 물론 시험이나 시험만큼 중요한 과제물을 준비해야 하기도 한다. 정말 종강할 때까지, 전부 다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닌 셈이다. 

 그런 것 좀 안 하며 살아가면 안 되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어떻게 보면 문창과를 비롯한 예술학과는 좀 막 살 수 있는 학과로 느껴지지 않는가. 술, 담배, 좌절과 일탈은 문창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마치 내 고등학교 시절 머릿속을 부유하던 망상과 같은 것으로, 그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우리는 여기에 되도 않는 망상 속 문인 흉내를 내러 온 게 아니라 공부하러 온 것이라는 것을, 타 학과생뿐 아니라 나 역시도 늘 되새겨야 한다. 조금 더 자유로운 생활을 택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이지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문창과도 시험 기간에 밤 새느라 골머리를 썩인다. 또, 공부하는 내용의 성격이 다르기에 때로는 좀 더 쉽게 쉽게 가는 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사실 개인이 가진 생각까지 비판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그게 뭐가 됐던 더 이상 얼굴 볼 거 아닌 이상 입 밖으로 내지는 않기를 권고하고 싶다. 문창과 학생들은 과제뿐 아니라 그 과제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다퉈야 한다.

 취업률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 이건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동기들과 만나면 언제나 눈을 감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날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울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사실 난 문학 자체가 돈을 벌기 수월한 학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환상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정도 체념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문학을 통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물론 그건 우리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자퇴를 하거나 전과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적어도 나는, 물론 다른 사람도 그럴 것 같지만, 그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미래를 위해 다른 길을 고른 그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어느 학과든 본인과 맞지 않으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지는데 문창과는 특히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론수업의 비율은 줄고 창작수업이 늘어난다.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빨리 방향을 바꾸는 게 맞다. 원해서 온 사람도 고통받는 마당에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너무 힘든 일일 것이다.

 

왜 살아남는가


 어쩌면 문창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했다.


-문창과에 입학하기 전 생각했던 문창과에 대해, 혹은 문창과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동기☆: 일단 문창과에 입학하기 전 생각했던 문창과는 뭔가···.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도드라지는 색깔의 세계 같은 느낌. 나는 성적 맞춰서 들어온 거라서 문창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없지 않아 있어서···.

동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법한 것을 꿈꿨다. 매일 글을 쓰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 지겹도록 이야기하고, 읽어야 할 책이 넘쳐나서 울상 짓다가도 내심 행복해하는···. 무엇보다도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거기에 고고한 문학도 같은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판타지까지 더해서.

선배☾: 고등학교 때 일반고 문청이었기 때문에 대학 오면 다 같이 합평하고 수업시간 외에도 열심히 글 쓰고 진짜 죽은 시인의 사회 주인공들처럼 낭만적인 대학생활 할 줄 알았단다..

동기☼: 문창과 생의 삶은 굉장히 단조롭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이 치열할 수도, 지루할 수도 있다. 사실 학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을 뿐, 문학이라는 예술은 개인이 스스로 배워나가야 하는 부분이 크다. 사색과 감상, 그리고 창작의 고통 세 박자가 고루 섞인 한량 같은 삶을 원한다면 문창과는 굿 


-현재 문창과 학생으로서의 삶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나요?

동기☆: 현재 문창과 학생으로서의 삶은 평범한 대학생과는 조금 다른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대학생 같은 삶...?

동기★: 그리고 문창과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고사는 일’이라는 천재지변이 부지불식간에 나를 덮쳤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진학 전후에 대해서는, 글을 쓰긴 쓰는데, 내가 원하는 글을 못 쓰고 있으니까 답답하고 막막한 기분이 든다. 이곳에 온 걸 후회하진 않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장밋빛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 말고도 다 힘든데···.

선배☾: 현재 문창과 학생으로서의 삶은 매우 지침···. 창작과 상관없는 과제가 너무 많아서 자기 글 시간이 없고 생각보다 동기들도 글 열심히 안 씀···. 문창과 내에서보단 밖에서 더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

동기☼: 문창과 학생으로서 학과의 가르침이나 지원보다는 혼자 문학을 배워나가야 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이 굉장한 자율성이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긴 하다.


 문학 자체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고, 문창과가 그와 같은 쪽에 놓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와중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학우들도 나와 비슷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굳이 여기에 남아서 힘들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 만큼, 그만큼 원하는 것이 여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나마저도 고개를 젓는 건 너무 아픈 일이다. 사실 나는 우리가 낭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차라리 지금 내가 다른 과로 가서 취업을 준비하는 게 보편적인 시선에서는 더 현명한 선택임을 모르지 않는다. 때로는 나도 거기에 조심스레 동조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에 대고 ‘그래도···.’라고 슬그머니 반박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문창과 학생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