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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기획-대학] 대2병 환자들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좌담회



대2병 환자들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좌담회

편집위원 | 강연주


 발병한 환자들이 마주하곤 하는 현실의 벽은 조금 전형적인 면이 있다. ‘요즘 세대들이 겪는 어려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단어의 표현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의미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대2병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인지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이야기는 딱딱한 사전이 아니라 환자의 가벼운 넋두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돈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말은, 그렇기에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밑에서 계속되는 대2병 환자들의 이야기는 당신들과 닮은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를 것이다. 대2병에 대한 좌담회답게 거기에는 아무런 규제 없이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를 읽는 당신의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좌담회는 러비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무기명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 스스로가 대2병이라고 생각해?

E: 난 확신까지는 모르겠는데. 정신 상태랑 비슷한 느낌? 평소에도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아닐 때도 있는 것처럼. 내가 대2병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서.

A: 기사에서 정의내린 걸로 따지자면 난 대2병인지 잘 모르겠네. 난 신입생이라고 해서 들뜬 적이 없어서. 나는 삼수 때부터 쭉 내려앉았거든. 내 생각엔, 대2병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난 결코 안 될 것이다.’하는 어떤 정신적 상태야. 그럼 난 대2병이 맞는 것 같아. 

D: 나는 반반? 2학년 1학기 까지는 그래도 뭔가 설레기도 하고 내가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구나, 그랬는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게 부모님께서 나한테 너는 늘 꿈속에서 산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너 좀 있으면 졸업인데 어쩌려고 그러니, 그러기에 공무원 준비하라고 했잖아, 이런 얘기를 들었어. 나는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내가 진전이 없는 느낌? 자꾸 과거에만 목메게 되는 것 같고. 그토록 원하던 복수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짜증과 스트레스만 늘지. 그 전에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는데 점점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별 불안한 생각이 다 들고. 이번 방학에는 좀 쉬어보려고 일부러 아무것도, 뭐 외부활동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거, 안 했거든? 근데 그게 오히려 스스로에게 위안은커녕 더 스트레스인 거야. 집에서도 ‘너 내년에 취업이잖아, 근데 아무것도 안 해? 토익은 준비 안 해? 운전면허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스트레스받고.

B: 나는, 취업 깡패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공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어. 다른 학과보다 취업이 안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이미 평균적으로 취업이 잘 된다고 얘기할 수가 없게 된 거지. 가능성의 차이인 것 같아. 나는 오히려 공대 내에서 대2병이 더 심각해지는 것 같아. 우리 학과 200명 중에서 20명 정도는 정말 좋은 회사에 취직해. 나머지 180명이 문제지. 그 사람들 졸업이 자꾸 밀리는 거야. 그래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나의 위치를 더 낮추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 비교군이 있어서. 물론 ‘나는 적당히 학점 관리하면 어떻게든 취업 되겠지’하는 애들이 있는데 이 생각이 4학년이 되면 다 깨져. 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대2병이라고 완전 확신합니다.


2. 자신이 대2병에 걸렸음을 깨닫게 해 주었던 증상이나 일화가 있다면 말해줘. 

B: 내가 생각하기엔, 내가 노력하는데 이 위에 뭔가 눈에는 보이지만 올라갈 수 없도록 막는 유리천장 같은 게 있어서 느껴지는 힘듦, 불안함 뭐 이런 것들이 처음 증상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C: 이게 대2병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스무 살 때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학교만 다녔거든. 그 후에는 군대 갔고.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 몇 년 동안 뭘 한 게 없는 거야. 일학년 때도 학점만 채워 들었고 군대에서도 그냥 시키는 일만 했고.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까 지금 아무 준비가 안 된 게 느껴져, 뭔가를 해야겠다는 건 알겠거든. 곰곰이 생각해보면 할 게 많기도 하고. 근데 문제는 할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공 공부나 다양한 활동을 한다든가 해서 이번 방학은 알차게 보내자고 마음먹었지만 사실 거의 못 지켰어. 허송세월만 보내는 것 같고. 거기서 불안감이 느껴져.

A: 이게 진짜 중요한 대2병 중상 중 하나인 게, 내가 뭘 할 때 요리(cook)하고 이런 게 아니라 나중에 써먹을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E: 그게 있는 거 같아. 뭔가를 쓸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 예를 들어서 내가 좋아서 악기를 하나 배워야지, 하면 대충 배우는 건 안 되고 뭔가 나중에 써먹을 정도까지는 해야 되고. 뭐든지 결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D: 예전에는 되게 바쁜 삶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되게 혼자 있고 싶어. 무기력해. 취업이라는 목표를 앞두고 노력할 때는 즐거웠는데, 뒤돌아보니까 그게 다 별 게 아닌 것 같고. 

F: 나는 1학년 때부터 느꼈었어. 나는 대2병이 되게 빨리 왔어. 내가 막상 대학에 왔을 때 마주했던 모든 것들이 그 전에 내가 생각했던 거랑 좀 많이 달랐고, 취업도 안 된다고 그러고. 전과를 1학년 1학기 끝나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그때 제일 많이 고려했던 게 취업률이었어. 원하는 게 없으면 취업이라도 하자고. 전과하자고 결심했던 순간부터 대2병이 시작됐던 것 같아. 그때부터 모든 게 다 불안한 거야. 학점관리도 쉽지 않고, 만약 전과가 안 되면 나는 여기서 취업도 안 되고, 적응도 못 하고, 재미도 못 느끼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전과를 성공했는데, 그런데도 거기서 또 불안해지는 거야. 학기 늦춰지는 거에도 조바심을 느끼고. 불안해서 영어도 하고 이것저것 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서 더 불안해지고···.


3. 대2병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현재 우리는 정말 병에 걸린 걸까?

B: 중2병도 중2에 한정시키지 않잖아. 이런 현상들을 대표하는 격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 단어를 바꿔야 한다느니, 그런 논의는 솔직히 필요 없는 것 같고. 우리가 20대가 돼서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그 선택에 의해서 나에게 뭔가 의미 있는 결과가 돌아오길 바라는 게 대부분이거든. 내가 공부를 하든, 봉사활동을 하든,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나한테 보장되는 미래가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극명한 사실로부터 오는 부수적 감정들이 대2병의 증상이라고 생각하거든. 대2병이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 표현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현재 우리는 정말로 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E: 병리적인 현상에 비슷하다고는 생각해.

B: 그래서 나는 오히려 대2병이라는 단어가 생긴 걸 반기기도 해. 이런 단어가 생김으로써 우리가 이런 증상들을 묶어서 이걸 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잖아. 더 이상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 가령, 옛날에 나 어릴 때 되게 산만해서 많이 맞았거든. 근데 내가 중학생이 되니까 ADHD라는 병이 생기더라? 그 후부터 ADHD걸린 애들이 맞지를 않았어. 치료해야 할 병이 된 거지. 그것처럼 이게 하나의 병이 됨으로써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F: 근데 또 대2병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후로 좀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도 한 게, ‘네가 그렇다고? 아냐 잠깐 우울한 거야.’하고 힘듦을 부정하는 의견들이 좀 생기는 것 같아. 


4. 주변에 대2병 환자들이 많이 있어? 그 사람들은 주로 어떤 증상을 보였어?

E: 국문과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언니가 졸업을 했어. 지금 그 친구도 4학년이고. 근데 그 언니가 졸업하고 나서 몇 달을 놀고 있단 말이야. 내 친구가 그걸 보고 자기도 이제 곧 졸업인데, 자기는 문과인데 심지어 공대 나온 언니조차 집에서 놀고 있다고 되게 불안해하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어느 날 자기가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고 하더라···.

A: 내 주변에 있는 친구 이야긴데, 교직원 뽑는 데 석사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거야. 심지어 내 친구는 석사가 아니야. 그걸 보고 손을 놓게 되더라고 하더라. 자기는 낮은 월급도 감수하고 그 직업을 알아본 거였는데 거기에 연, 고대 석사들이 교직원에 지원을 하고 있더라는 거야. 그걸 보면서 난 뭔가, 싶어서 되게 허무하다고 하더라고. 무가치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B: 주변에 우리 학과만 봐도 이런 병이 없는 사람은 되게 드문 것 같거든. 내색을 안 할 뿐이지. 내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는데 다들 그런 것 같아. 뭐 3학년, 4학년쯤 되면 일단 또 공대 학과 생활 얼마나 힘들어. 근데 그렇게 한다고 우리가 뭐 취업을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이게 또 너무 힘드니까, 다른 스펙을 못 쌓는 거야. 그냥 취업 직전에 잠깐 한 봉사활동 같은 줄 채우기 수준의 스펙밖에 없고. 거기서 오는 불안감 같은 건 오히려 공대가 더 심한 것 같아. 이것저것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F: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땐가? 우리 아파트에 자살한 청년이 한 명 있었어. 근데 그때 한참 대2병이라는 게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거든. 그 대학생의 자살에 대한 기사를 누가 썼는데 그 학생이 우울증 환자였다고, 그때는 막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목을 안 받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대중의 의견이 쏠려있던 시대여서. 기사가 되게 악의적이었어. 지방대 남학생이었는데 취업이 안 돼서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 뭐 그렇게. 어떻게 보면 그 사람도 대2병에 걸린 거잖아. 그거를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을 시켰어 그때. 그때는 뭔지 몰랐었는데. 


5. 대2병이 개인의 문제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 앞에서 들어본 것처럼 다들 굉장히 열심히 했잖아. 나는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 어디서부터 문제냐고 한다면, 우리나라 전반에 깔린 교육시스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 어렸을 때부터 가장 큰 목표는 다들 연, 고대잖아. 내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어느 대학에 간지로 평가되는 거야. 이제 대학에 왔으면 어떻게든 취업을 하기만 하면 돼. 내가 대학생활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보냈든, 그런 건 다 필요 없어 그냥 취업만 하면 다 끝나는 거야. 모든 삶의 경로를 이렇게 보니까 취업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게 아무리 즐겁더라도 그걸 지양하게 되는 거야.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가고, 열심히 공부하면 취업이 되고 그럼 행복하게 살고. 다 이렇게 세상을 보게끔 만든 거야. 뭐 내가 대학을 안 가고 제과 제빵을 배우면서 행복하게 산다, 이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거지. 

C: 그동안 우리는 공부하는 것만 배웠는데, 우리한테 그것만 가르쳐줬는데 대학에 오니까 그냥 그동안 배웠던 것처럼 공부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잖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애초에 배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대2병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어. 

E: 교육 자체가 일직선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생각을 막아버린다는 느낌? 

B: 우리는 계속 어느 길로 가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어. 근데 또 사실 답은 공부에 있다고 생각해. 이 시대의 문제를 발견한다거나 우리의 문제를 사회와 엮는다거나. 이런 게 없으면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환이 되는 거야. 사실 대2병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이 있고. 사실 이 대2병의 증상들은, 모든 힘듦이 내 문제니까, 이런 생각에서 온다고 생각해. 

E: 대2병을 부채질하는 게 바로 그 노오오력이지.

B: 오히려 노력이 노력이 될 수 없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더 무기력해지지. 


6. 주변 지인들에게 대2병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어? 만약 경험이 있다면, 그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

D: 난 이런 거 상담 못 해··· 지금 휴학 얘기 일 년째 꺼내고 있는데 부모님께서는 뭐 여자는 나이가 중요하니까 빨리 취직해야 한다고.

F: 난 그래서 사람이 심적으로 아픈 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2병도 증상이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 확신이 없고. 근데 그게 몸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냥 우울함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아. 내가 지난 학기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다 해봤어. 동아리도 그렇고 수업도 내가 듣고 싶은 걸로만 들어보고. 난 그렇게 하면 내 우울함이 나을 줄 알았어. 근데 그 우울함이 그걸로 안 사라지는 거야. 그냥 공부가 힘든 게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 증명을 하려고 병원에 갔어, 혼자. 그래서 증명서를 떼 와서 간신히 휴학 허락을 받은 거야.


7. 대2병이 치료 가능하다고 생각해? 

B: 일단, 이런 시스템 안에 있다면 대2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진짜 말 그대로 좋은 직장이 취업하는 것 빼고는. 대2병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정말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벽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해. 우리가 뭐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지만 이게 힘들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어서 생기는 것도 아냐. 이건 그냥 우리가 어떤 식으로 가든 저 길 끝에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 있어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계속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면 절대 치유 불가능하지. 그래서 이걸 벗어나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A: 두 번째 질문이랑 좀 연계해보면, 대2병이 이런 식으로, 난 불안하니까 뭔가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걸 해야 돼! 뭐 이런 걸로는 치료가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럼 계속 뭘 해야 되는 거잖아. 뭐 토익도 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공부도 하고. 옆에 애가 유학 갔다 왔으면 나도 유학 가야 되고, 뭐 이런 식으로 치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결국,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는 크게 답이 없지.

D: 이민이 가장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이지. 난 이민 갈 거야. 

F: 다들 되게 큰 결론인데, 나는 좀 미미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냥 내가 자신한테서 원인 찾지 말고. 자신만의 우울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

E: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사회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 개인끼리 연대해야 하는 거지.




강연주

kkyj0705@naver.com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장들이 축약되고 삭제되었습니다. 

지면 상 모든 내용을 실을 수 없어 아쉽네요ㅠ 

후에 인터넷에서 원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풀 버전을 준비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른 글로 올라올거에요.-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