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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추모는 원래 '그렇'습니다



추모는 원래 '그렇'습니다


편집위원 | 한승이


추모를 지겨워하는 이들

 어느 새 추모는 빈번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고가 일어나면 빠르게 그 소식이 SNS에 올라오고, 사건이 공론화되며 시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진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점점 힘을 불리는 사회에의 불안감은 추모를 전국적인 무언가로 만든다. 물론 그 이전에도 추모는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같은 국가적인 재난 사고에 대처하고, 엄숙하게 그들을 기리는 것은 항상 국가의 몫이었다. 최근의 추모는 그와 다르다. 세월호는 그 기점이다. 배가 침몰해가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들었고 따른 이들은 죽었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ㅡ죽었다. 정부는 올바른 대처는커녕 사고 직후 행정부 수장의 행방도 불분명했고, 수습과 책임자의 처벌에 있어서도 의심스러웠다. 모든 상황에 있어서 정부를 불신하기 충분했다. 세월호 추모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가가 주도하는 엄숙하고 이의가 발생하지 않는, 이미 끝난 상황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아니라 국가의 잘못된 행정을 규탄하는, 안전마저 위협당하는 이들의 분노가 된 것이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대다수가 그들을 동정하고 공감했다. 국가시스템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그러나 6개월도 되지 않아 상황은 뒤바뀌었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이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청하지도 않은 특례입학 때문에. 이미 다 진상규명도 끝난 사건을 가지고 지겹지도 않느냐는 아무 말으로. 왜일까? 그들도 분명히 처음에는 여론에 편승해 국가를 비난하지 않았었나. 왜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안타까워했던 일들이 지겨워졌을까. 이미 다 규명된 사고라서? 그게 아님은 인터넷 기사만 몇 개 훑어봐도 알 수 있다.


포스트잇 추모

 그리고 세월호 이후로 크게 일어난 추모가 하나 더 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3일에 한번 여성이 죽어나가는 나라에서 이 별다를 것 없는 사건이 언론에 주목받았던 이유도 여성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며 붙이는 포스트잇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이 사건에 큰 공포를 느꼈다. 그 동안 여자가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은 흔할 정도로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여자라는 이유’로 죽이지는 않았다. 치정살해든, 성폭력이든, 무엇이든 이유가 있었으니까. 피해자 이전에 지나갔던 사람들이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단지 여성이 물리적으로 약자라 희생양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 사건까지 더해지자 여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은 아무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 여자가 먼저 바람을 피웠겠지, 그 여자가 먼저 짧은 옷을 입고 늦은 밤에 다녔으니까. 그 이전까지는 원인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범인은 그냥 죽였다고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그냥. 단지 묻지마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그러나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희생양을 ‘여성’으로 취사선택한 상태에서는 이미 묻지마 살인이라고 볼 수 없다. 죽이기 전에 스스로에게라도 물어봤을 거다. 여자인가 아닌가. 많은 여성들이 피해자에게 자신을 투사했고, 천 개가 넘는 포스트잇이 붙여졌다.

 이 사건은 세월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취급을 받았다. 세월호는 그나마 사고의 원인이 부정당하지는 않았다. 국가의 재난 대응 체계가 문제라는 걸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은 처음에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묻지마 살인으로만 받아들여졌다. 조현병 환자가 여성만을 타겟으로 삼은 것은 그 사람이 여성을 싫어한다,는 단순한 명제가 아니라 그에게 여성혐오를 습득하게 한 사회를 깨닫게 한다. 사람들은 세월호에는 긍정했지만, 강남역은 부정했다.

 심지어 그들은 남들이 추모하는 것도 '불편해'했다. 세월호 1주년 추모에서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도 순수해야 할 추모가 정치적이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남들의 추모를 견디지 못하는 걸까?


추모불편러와의 Q&A

 노란 리본, 그리고 피묻은 하얀 리본을 내건 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혹은 지인에게 이런 종류의 말을 들어야 했다.

(가상의 인터뷰입니다.)


Q 추모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요...

A 추모집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아무도 당신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세월호는 분명히 사회적인 문제이고 많은 이들의 문제인식을 필요로 한다. 국가에게 더 나은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것을 떠나서도 굉장히 안타까운 문제다. 하지만 본인이 아무런 공감이 안되는 문제라면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다. 다른 이들이 추모한다고 미운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찔릴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추모 안한다고 당신에게 눈총을 주지는 않는다.


Q 지나다니는데 너무 시끄러워요. 추모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진 말아야 하는 거....

A 파업은 어떻게 견디나. 단순히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기만 하려고 추모하러 나온 건 아니다. 추모를 통해 일을 이렇게 만든 사회에,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걸 끊임없이 인지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나온다. 세월호 이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의심하게 되었고, 강남역 여성살해 이후 보다 많은 여자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 변화 촉구하는 걸 말리지는 말아야지. 정말 시끄러운 게 문제라면 투표철은 어떻게 생각하나. 크리스마스나 연말은? 산타에게도 불편 접수해보는 건.


Q 천안함은 어떻게 생각...

A 4.19는요? 5.18은? 지진피해는요? 위안부할머님들은? 화재는? 간첩은? 열차사고는? 성폭행은? 강도는? 우리 집 집값 내려간 건요? 이건 정말 의미 없는 물음이다. 천안함 추모할 사람은 하면 된다. 안 할 사람은 안 하면 되고. 동물권에 관심이 있으면 환경운동, 동물권 운동 하시고, 소득 불평등에 관심이 있으면 그 운동 하면 된다.


Q 순수해야할 추모가 변질되어 가는 것 같아요. 추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세요.

(같은 시리즈로 추모현장에서 갈등은 옳지 못합니다, 가 있다.)

A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송희일 감독이 아주 옳은 말을 한 적이 있다.

5.18 광주항쟁도 "순수한" 추모를 하라고 말했다. 세월호 때도 "순수한" 추모를 하라고 말했다. 노동쟁의하다 죽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순수한" 추모를 하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강남역 사건도 "순수한" 추모를 하라고 말한다. 추모는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가장 정치적 태도다. 세월호 때는 순수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발끈하던 이들이, 강남역 사건에는 거꾸로 순수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피억압자 역할을, 여성에 대해서는 억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에 대한 이 지고지순한 요청은 권력과 시스템에 의한 피해에서 "정치"를 떼어내고, 기존 질서와 권력관계를 용인하라는 다그침이다.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는 건 없다. 숨쉬는 것도 정치적이다. 홀로 살아오던 로빈스 크루소 앞에 원주민이 나타나는 순간 정치가 발생한다. 정치란 공동체의 삶의 양식, 혹은 사람들의 관계맺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순수하라는 다그침은 결국 순응하라는 말이다.



추모를 혐오하지 마세요

 감독의 말 그대로다. 정치적이지 않은 추모의 물결은 있을 수 없다. 누가 말했던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이 일은 심지어 개인적인 것도 아니다. 세월호 사건의 추모는 국가의 재난 시스템 마련 촉구와 사회적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런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것은 앞의 사건보다 더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우리는 당연하게 국가를 탓했다. 그런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왜 개인의 병 탓으로 돌리는가? 그가 여성을 혐오하게 된 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한 차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강남역도 그래야 한다. 이 일을 기폭제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받고 있는, 그러나 지금까지는 몰랐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여자라서 죽어야 했던 그를 기리고, 더 이상 그런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추모하는 것이다. 여성차별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추모 이후에 필요한 것

 추모 피로감이라는 말이 있단다. 참사 이후 추모로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어도 실제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한다. 추모하고 시위해서 아무리 문제를 눈앞에 보라고 들이밀어도 변하는 것이 없으면 당연히 지칠 수밖에. 검찰은 결국 강남역 사건을 묻지마 사건이라 규정지었다. 여성혐오인지 아닌지 물으니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몰라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하지만 한 번으로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의 물결이 활발하다. 이 정도로 페미니즘이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건 호주제 폐지 운동 이후로 처음이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던 사회에서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이 인터넷 서점 1위를 차지하는 사회로 변했다. 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유경근 씨는 17일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해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그는 이날 공개한, '사생결단식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국민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들었는데도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사항에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등이 배제된 것을 비판했다. 유가족들은 20대 국회 이전에는 의석수가 모자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20대 국회 이후로는 의석 수가 많아도 여론이 안 되면 할 수 없고 국회의 절차를 무시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추모는 분명히 많은 이들의 ‘사회적 각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추모 이후에 반드시 필요한 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제도적인 변화다. 정부는 그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특별법 개정을 피해왔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할 때다.



한승이

seang0449@gmail.com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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