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고립된 왕국 - A Kingdom of Isolation




고립된 왕국

(A Kingdom of Isolation)



편집위원|김지연



 지난 학기 시작을 앞두고 친구와 돈을 모아서 여름방학 때 영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영문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졸업하기 전, 영문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 곳곳을 둘러보고 오자는 뜻에서였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계획했지만, 돈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영국을 포기한 채 국내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친구와의 여행을 앞둔 일주일 전에 어떤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나서 이번에 영국 여행을 포기한 내 선택에 후회 아닌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식은 바로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연합(이하 EU) 탈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What is Brexit?

 브렉시트(Brexit)[각주:1]는 Britain(영국)과 Exit(탈퇴)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한 단어로, ‘영국의 EU 탈퇴’라는 뜻을 나타내는 신조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한 그렉시트(Grexit)에서 따온 말이다. 이처럼 EU에서 경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에서 EU 탈퇴 여론이 일었고 국민투표 결과 ‘탈퇴’가 결정됐다.

 브렉시트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는 유럽의 재정 상황 악화다. 영국은 EU에서 분담금[각주:2]을 많이 내는 두 번째 국가다. 분담금 절대 금액에서 영국은 독일 다음으로 많지만, 국민 1인당 기준으로는 8위를 차지한다. (1위는 덴마크) 2012년, 유럽의 재정위기가 점차 심각해지자 영국이 내야 할 EU 분담금 부담이 커졌고 이에 영국 보수당을 중심으로 EU 잔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영국 보수당 소속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다보스포럼 참석 직전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에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또한, 영국 내 취업 목적의 이민자 수가 많이 증가하자 EU 탈퇴 요구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23일(현지시각),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반대를 3.8포인트 차이인 51.9%로 이기면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었다. 

 

영국의 억울함 속 감춰진 이기심

 브렉시트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이민자 수와 관련되어 있다. EU 회원국 사이에서는 취업, 학업 등을 이유로 사람들이 이주하는 과정이 자유롭게 되어있어서 각국의 경제 상황에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 독일 사람이 프랑스에 살면서 일을 하거나 이탈리아 사람이 덴마크에 공부하러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영국민 일부는 취업을 목적으로 영국에 오는 이민자 수가 증가하자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작년 말에는 시리아 난민 유입이 EU 회원국 자격으로 인해 계속되자 영국 내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민들의 시각은 더욱 부정적으로 되었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하지만 그들이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외부에서 영국으로 들어와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도 많지만, 영국민들도 다른 EU 회원국에 취업을 목적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민들이 외국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생각 못 하고 자국에 있는 이민자들만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시각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이기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국의 이러한 사정을 눈치챈 EU는 부자 국가, 영국[각주:3]을 붙잡기 위해 영국이 제시한 여러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①이민자 복지혜택 제한

②영국 의회의 자주권 강화

③EU 규제에 대한 영국의 선택권 부여

④비유로존 국가의 유로존 시장 접근 보장

 위의 사항들이 바로 그 조건이었다. 지난 2월에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정상들과 EU 개혁안에 합의했다. 이 개혁안은 영국에만 특별한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이 제시한 요구 조건을 좀 더 살펴보면 EU가 얼마나 많은 특권을 영국에게 줬는지 알 수 있다. 통과된 개혁안으로 인해 영국은 EU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을 갖게 되었고, 유로존의 결정이 영국의 금융 산업 등에 피해를 줄 때 긴급제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EU가 정치·경제적으로 통합을 강화할 때 영국은 동참해야 할 강제성이 없어졌다. 특히 EU 회원국인데도 유로화 대신 파운드화를 써왔던 영국에게 있어 ‘비유로존 국가의 유로존 시장 접근 보장’은 매력적인 조건으로 다가왔다.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EU도 타격을 입는다”는 영국 정부의 협박에 EU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EU의 노력에 감동(?)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를 주장했던 자기 뜻을 바꾸며 EU 잔류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보수당 지지 세력을 포함해 영국의 EU 탈퇴는 점차 여론 속에 그 뿌리를 키워가기 시작했고 결국 브렉시트는 통과됐다.

 하지만 신기한 점을 꼽자면 브렉시트 통과를 주도한 사람들은 있지만 이를 책임질 사람들이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영국은 보수당을 중심으로 EU 탈퇴가 영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초반에 브렉시트를 주장했지만, EU가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제시했던 요구조건을 대부분 수용하자 태도를 바꿔 영국의 EU 잔류를 국민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이미 노년층은 브렉시트 찬성으로 돌아섰고 투표 결과는 캐머런 총리를 총리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였다.

 브렉시트 논쟁을 일으킨 정치인들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혼란스러움은 영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보수당을 지지한 대부분 노년층은 브렉시트 찬성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주로 청년층)은 브렉시트 반대에 표를 던졌다. 그래서 이들은 브렉시트 재투표, ‘런던 독립’과 같은 의견에 목소리를 더했다.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

 우리 어른들이 종종 하는 말 중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EU 회원국들이 지금 이 말에 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EU 회원국들은 영국의 EU 탈퇴가 발표된 이후 별다른 이야기는 없지만 불안정한 기류를 숨길 수는 없어 보인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체코 등에서는 각각 Frexit, Italeave, Denxit, Chexit 등의 신조어가 생기며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만약 브렉시트 후 영국 경제 상황이 좋아진다면 이러한 목소리는 힘을 얻어 더 큰 소리를 낼 것이다. 그리고 EU는 그 힘을 잃고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유럽의 어느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쟁 후 평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EU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거나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수도...) 지금 유럽은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어느 쪽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계산기를 바삐 두드리고 있는 듯하다.

 떠나간 자의 사정도 그리 녹록지 만은 않아 보인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브렉시트는 영국민들 손에 의해 통과되었지만, 그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런던 독립’과 스코틀랜드가 그렇다. 런던만이라도 EU에 다시 들어가자는 런던 독립운동이 벌어졌고, 브렉시트 반대 세력이 유독 강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스코틀랜드 같은 경우 영국 자체에서 독립하자는 내용으로 투표를 진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브렉시트 결정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각)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영국에서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후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제 1 장관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각주:4]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섬나라의 특성상 그들은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다’와 같은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영국은 유럽의 몇 안 되는 섬나라 중 하나다. 영토 면적이 작을지라도 유럽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어느 나라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과거형을 쓴 이유는 영국이 EU 회원국이었을 때는 명실상부한 유럽경제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에 있던 외국 기업체 본부들이 다른 유럽 지역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과연 영국은 EU 탈퇴 후에도 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브렉시트가 결정되었다고 영국이 바로 EU를 탈퇴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회원국 탈퇴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EU 조약(리스본 조약) 50조[각주:5]에 따라 절차를 밟으며 EU 탈퇴를 진행할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도 2년이면 자동탈퇴 처리되지만, 공식적으로 탈퇴 국민투표 이후 리스본조약 50조를 이행해야 하는 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 ‘EU 회원국으로서의 영국’은 당분간 혹은 영원히 과거에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의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한 지 43년 만이다. 영국은 EEC에 가입한 지 2년 만인 1975년에도 EEC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엔 영국민의 67%가 잔류를 지지했다. 과거와 다른 선택을 투표로 보여준 영국민들. 그들 모두 지금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이 소용돌이의 끝이 어디일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지연

kjy2781@naver.com

브렉시트 통과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져서 영국 여행하기에 좋았다고 하네요..



  1. EU 탈퇴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Britain(영국)과 Remain(잔류)을 합해 ‘브리메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본문으로]
  2. <연합뉴스>, 「영국민, 브렉시트 궁금증 1순위는 ‘EU 분담금’」, 2016. 02. 29. [본문으로]
  3. 분담금 부담 국가 2위 [본문으로]
  4. <아주경제>, 「“독립하자” 스코틀랜드, 주민투표 요구 시위」, 2016. 07. 31. [본문으로]
  5. EU탈퇴하려는 회원국이 EU이사회에 탈퇴 의사를 정식으로 통보하면 이 시점으로부터 2년간 회원국과 EU가 맺어온 무역 등을 새로 협상해야 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