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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돈 내고 생리하는 사회



돈 내고 생리하는 사회


편집위원|김지연


 지난봄, 충격적인 뉴스를 읽고 나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정말 쉽지 않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덧대어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 사례를 소개한 뉴스였다. 평소 주위에서 생리대가 다른 생필품에 비해 비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집의 경우, 생리대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할인 기간을 기다렸다가 한 번에 많이 사둔다. 물론 할인 기간 전에 급히 필요하게 되면 비싼 값을 치르고 살 수밖에 없다. ‘혹시 원자재 가격이 비싸서 생리대 가격이 비싼 걸까?’하는 생각에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생리대 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반비례한다 (by독과점)

 소비자단체협의회가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2016년 4월까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10.6% 상승했지만, 생리대 가격은 25.6%나 올랐다. 심지어 생리대 재료인 펄프와 부직포의 수입물가지수는 2010년보다 각각 29.6%, 7.6% 떨어졌다.[각주:1] 원자재 가격은 내려갔지만 생리대 가격이 오른 셈이다. 생리대 자체가 비싸게 팔리는 건 아닐까 싶어 다른 나라는 어떤지 알아봤다. 



 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거의 50%가량 비싼 가격에 생리대가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독과점’이 있다. 현재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각주:2]가 55%, LG유니참[각주:3]이 23%, 한국P&G[각주:4]가 15%로 3사의 시장 점유율이 전체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에서 주요 3개 업체의 시장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해 업체들을 조사하게 되어 있는데 공정위는 제대로 시장조사를 한 적이 없다.[각주:5] 심지어 유한킴벌리는 올해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려다 ‘신발 깔창 생리대’ 사례로 들끓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인상안을 철회했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다른 모습

 2015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국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은 약 10만 명이다. 월평균 2~3만 원의 비용이 드는 생리대가 그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된 언급이 미안하지만 ‘신발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인해 정부와 지자체의 생리대 지원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시, 성남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실행하거나 구상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국민기초생활수급 청소녀(만10~19세)를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신청을 받아서 8월분부터 희망배송지로 생리대 5개월분(1개월 36개, 중형&대형)을 보내기로 했다. 시는 생리대 지원에 예산 5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해서 민간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를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서울시와 더불어 경기도 성남시 역시 사회복지단체와 손잡고 취약계층 생리대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연말까지 5억 원을 모금해 취약계층 청소녀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사업을 위해 지난 7월, 이재명 성남시장은 ‘저소득 가정의 여성 생리대 지원’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그리고 효과가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작 이러한 일의 핵심이 되어야 할 정부는 생리대 지원 사업을 담당할 부처를 정하느라 시간만 끌고 있다. 심지어 “생리대는 기호품이라 구호 지원 물품에서 제외했다[각주:6]”는 말은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재빨리 태도를 바꾸며 이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자체의 생리대 지원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를 적극 검토·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부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정부는 일반적인 역할을 거부하는 듯하다.

 전북 전주시가 지난 6월, 전국 처음으로 실시한 저소득층 가정 청소년 여성용품(생리대) 지원사업이 정부에 의해 자칫 중단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후원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지속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다니... 전주시 관계자는 정부의 ‘승인’이 문제라고 한다. 정부는 사회보장과 관련된 신규 사업을 ‘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예산 액수와 상관없이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승인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동안에도 생리대 살 돈이 없는 학생들은 다른 비위생적인 것으로 생리대를 대체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하루라도 더 빨리 제대로 된 생리대 지원 사업이 나왔으면 좋겠다.

 해외에서는 생리대 지원 사업이 더 효과적으로 잘 되어 있다. 미국 뉴욕시는 세계 최초로 사실상 생리대가 무료인 도시라 불린다. 뉴욕시 관내 모든 공립학교, 교도소, 노숙자 쉼터에서 여성용품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법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호주 시드니에서는 여성 위생용품을 시의 공공시설에서 무료로 제공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전히 비싼 생리대


 2016년,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신발 깔창 생리대가 사회에 큰 파장을 안긴 지도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안 그래도 비싼 생리대 값을 더 올리려다 철수한 유한킴벌리는 이미지 회복을 위해 중저가 생리대 개발 계획을 밝히고 자사 생리대를 기부했다. LG유니참과 한국P&G 역시 생리대 기부에 적극적이다. 다만 유한킴벌리와는 달리 중저가 생리대 개발 관련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이처럼 기업들은 대체로 생리대 기부와 같이 일회성에 그칠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의 본질은 ‘비싼 생리대 가격’이어서 생리대 기부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제2, 제3의 깔창 생리대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혹은 기업체가 생리대 가격을 낮추든가...)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대안, 정책이 시행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생리대는 정부가 재정적으로 국민에게 지원해줘야 할 물품 중 하나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생리대를 기호품으로 여기는 발언을 했다. 생리대를 기호품으로 생각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다. 제품 선택 등 개인 취향의 문제가 있고 오래 보관할 경우 변질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 물론 나는 생리대를 필수품이 아닌 기호품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의 면도기는 필수품이면서 왜 여성의 생리대만 기호품으로 여기는지, 그 궁금증은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생리대 광고는 ‘시청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는 광고’로 판단되어 1970년대 광고 금지 처분을 받았다. 생리대 광고 금지는 1995년에야 해제되었는데, 이듬해 『동아일보』에 생리대 광고를 둘러싼 찬반 토론이 게재되기도 했다. 반대 의견의 주된 이유는 “밥맛 달아난다[각주:7]”였다. 이처럼 생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 계속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생리대가 필수품이라는 점을 다들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남성들에게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얘기라 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깝게는 그들의 어머니, 여자 형제들, 더 나아가 미래의 배우자 혹은 자녀가 생리대와 관련이 있거나 있을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생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XX 염색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생리를 하는 것이다. 여성은 한 달 동안 짧게는 사흘,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거의 계속 피를 흘린다.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생리통도 매달 경험한다. 평균 12세에 초경을 시작해 55세에 완경[각주:8]을 한다. 평생 약 500회의 생리를 3,000일에 걸쳐 하는데, 이를 위해 1인당 1만 2,000여 개의 생리대가 필요하다.[각주:9]

 생리를 하는 데 있어 신체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도 1~2년이 아닌 40여 년 동안 매달 며칠을 피 흘리며 지내는 일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특히 여름에는 찝찝함을 넘어 끔찍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그들의 신체적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면 경제적 부담이라도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적 차원에서 있어 생리대 지원은 그들에게 필요가 아닌 필수다.




김지연

kjy2781@naver.com

생리대, 진짜 비싸죠... 참고로 유한킴벌리와 유한양행은 다른 회사입니다.




  1. 󰡔헤럴드경제󰡕, 「[안그래도 비싼 생리대①]한국만 유독 50% 더 비싸다...세계 생리대 가격 비교해봤더니」, 2016. 06. 02. [본문으로]
  2. 화이트, 좋은느낌 [본문으로]
  3. 바디피트, 귀애랑 [본문으로]
  4. 위스퍼 [본문으로]
  5. 『 한국경제』, 「[정치人]“깔창 생리대라니…” 업계 독과점에 발끈한 김승희」, 2016. 07. 27. [본문으로]
  6. 국민안전처가 지난 4월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하며 (지난 7월8일 시행) 생리대를 응급구호 세트에서 제외했다. [본문으로]
  7. 『시사IN Live』, 「인류의 절반은 평생 3000일 동안 생리를 한다」, 2016. 07. 22. [본문으로]
  8. ‘여성성의 상실이 아닌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폐경 대신 완경이란 단어를 사용함 [본문으로]
  9. 위의 기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