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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로불편러와의 Q&A


프로불편러와의 Q & A

편집위원 | 한승이



분홍, 파랑이 지배하는 세계

 에버랜드는 ‘영원히 지속하는 동심의 세계’를 가정한 꿈과 환상의 나라다. 하지만 그 동심의 세계에도 유지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곳곳에 상품점이 있고, 현재 필자는 그중 한 곳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다. 하하. 멍하니 버블건을 시연하고 있을 때면, 물건 대부분이 여자용, 아니면 남자용으로 구분돼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아느냐고? 에버랜드에는 고유 캐릭터가 있는데 레니와 라라가 그 중심이다. 레니는 동물왕국 왕자인 사자고, 라라는 레니의 친구로 무슨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별이 ‘여자’인 캐릭터다. 주요 상품에는 꼭 둘이 등장해 각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공략한다.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가족 단위로 오신 할머니들은 이렇게 물으시기도 한다. “여기 남자애들이 갖고 노는 건 뭐가 있어?” 그러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손님, 이 제품들은 다 남녀 공용이에요.” 하지만 과연 그게 여남공용일까. 여자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분홍색을, 남자아이들은 파란색을 고른다. 가끔 아이가 반대로 색을 고르면 부모는 정말 이 색으로 할 거냐 묻고는 결국 ‘성별에 맞는’ 색으로 사기도 한다. 정말 공용이라면 분홍색 장난감을 남자아이들도 절반 정도는 골라야 할 텐데, 왜 그렇지 않을까? 사실 답[각주:1]은 우리 누구나 알고 있다. 분홍색은 여자의 색, 파란색은 남자의 색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윤정미 작가의 핑크 블루 프로젝트[각주:2]


 가끔 여자아이들이 다른 색깔 가방이나 파란색 가방을 메기는 해도, 남자아이 중에 핫핑크 공주님 캐릭터 가방을 메는 아이는 없다. “저런 건 여자애들이나 쓰는 거야!”라는 말은 부모세대에서 출발해 아이에게 도착한다. 이런 성별 고정관념은 아직도 문제없이, 멀쩡하게 통용되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에버랜드 마크 색이 보라색, 다홍색, 녹색이던데 그거 쓰면 되잖아. 굳이 파란색, 분홍색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굳이 바꿔야 한다고 못 느끼는 거겠지? 요즘 같은 시기엔 바꿔서 홍보해도 잘 먹힐 텐데, 성차별적인 색 없앴다고. 통념에서 벗어나면 안 팔릴까 봐 그러나’

 그리고 나는 이게 불편하다. 아아아-주. 나는 프로 불편러라고 불린다.



여알못인 당신을 위해

 여기까지 읽은 당신들은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Q 아니, 뭘 저런 거로 불편해해? 각박한 이 세상, 개복치 멘탈로 살아갈 수 있으세요?

A 잘 못살아서 지금 여기서 글 쓰고 있습니다. 더러운 세상, 내 할 말이라도 하고 살게요.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여알못이다. 여혐 알지도 못하는 사람.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 두 단어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저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그 의미를 멋대로 짐작하고,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을 비난한다. 심지어 “한국형 페미니즘.”,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다.”라는 말들도 듣는다. 듣는 페미니스트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페미니즘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생각은 여남이 평등하다는 거다. 물론 지향점과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2014년 OECD 통계 성차별 국가 117위에 빛나며, 임금 격차는 14년간 부동의 1위, 강력범죄 피해자는 주로 여성,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다.[각주:3] 페미니즘의 한계, 단점들을 비판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여성혐오’의 뜻도 모른 채, ‘여성혐오? 나 여자 좋아하는데?’ 혹은 ‘내가 여잔데 무슨 여성 혐오야.’ 라고 말하는 당신이 비판하는 것은 굉장한 어폐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어서 젠더 의식이 1도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도 힘든 성차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국은 역차별 사회”라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이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 들여왔고, 불편하기보다는 이득을 봐왔던 젠더 권력의 특권층이라는 얘기다. 마치 버스요금이 50원인지 1,200원인지 모르는, 그리고 영영 몰라도 되는 자본주의의 권력층 재벌처럼.

 여성혐오란 말 그대로의 ‘극혐’이 아니다. 오히려 뜻은 ‘멸시’에 가깝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성적 객체화, 타자화하고 2등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만드는 모든 것이다. 남성은 ‘성적 주체’인 남성 집단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여성을 ‘성적 객체화’한다.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남성 집단에서 배제하고 차별화, 타자화함으로써 성립한다. 말하자면, 남성이 성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객체화, 타자화되어야 한다. 백인이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흑인‘이란 열등한 인종이 필요했던 것처럼, 남성연대(호모소셜리티)에 소속되는 것-이란 한 여자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여성의 성적 객체화, 타자화에 의해 성립된다.

 예시를 들어볼까. “여자들은 좋겠다. 남자들이 대쉬하면 그냥 그중에 골라서 사귀면 되잖아.” 이것도 여성혐오다. 무슨 왈왈 소리냐고. 예쁘지 않은, 혹은 남자들에게 인기 없는 여자는 어디로 가고 남자들이 대쉬할 만한 여자만 남아 있나? 그런 여자들은 이미 ‘여자’의 범주에서, 사고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 당했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는 드물다. 잘생긴 남자처럼. 하지만 남성중심사회는 모든 여자들에게 예뻐질 것을 강요한다. “모든 여성은 아름답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다, 꾸미지 않은 여자만이 있을 뿐.” 이런 식으로. 또는 여자아이돌의 우상화로, 또는 “여자 몸무게가 50이 넘어가면 죄다.” “예의 좀 지켜라. 화장 좀 하고 다녀.”라는 말로. 그 결과 여자들은 성형을 하고, 예뻐진다. 그리고 성괴라고 불린다.




야동부터 정의당?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당신들이 많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차별은 심할수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정정하자. 차별에 관심이 없는 당신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성소수자나 장애인처럼. 그들은 어딘가에는 실존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에는 없는 투명인간이 된다. 여성혐오도 그렇게 취급당한다. 우리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어 못 알아챌 뿐, 여성혐오는 사회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법제, 교육, 미디어, 심지어는 영화 포스터에까지.

 이 포스터들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나. 왜인지 몰라도 불편하거나, 혹시나 섬뜩하지는 않은가? 이 포스터들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샤 벨스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목이 잘린 여성의 신체가 등장하는 영화 및 광고 포스터를 수집한다. 텀블러 계정을 개설한지 한 달여 만에 100여건의 포스터가 제보됐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잘 아는 킹스맨 포스터부터 보자. 왜 세 명의 남자는 “가젤” 역의 소피아 부텔라 다리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걸까?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아니면 처음부터 소피아 언니의 잘빠진 다리를 전시하는 것이 목표였나? 얼굴, 심지어 상체조차 나오지 않는 그녀의 다리는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프로젝트를 진행한 벨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미디어에서는 여성의 이미지를 조각내어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이에 집착하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신체의 일부분만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서 수동적인 대상이 되며, 여성의 가치는 남성에 대한 성적 어필만으로 표현된다.” 핵심은 ‘인간성 말살’이다. 우리 몸에서 머리는 생각을 담당하고 동기와 감정이 존재하는 부분이다. 이런 ‘머리가 잘린’ 여성의 이미지, 그것도 남성에게 성적 어필할 의도로 편집된 여성의 다리, 골반, 가슴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면-이것을 바로 성적 대상화라 합니다-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성적 대상화는 ‘야한 동영상’이라 불리는 포르노에서 정점을 찍는다. 

 대다수의 포르노가 남성을 겨냥하며, 그들이 바라는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성의 신체뿐만 아니라 행동 양식, 외모, 성격, 연애관이 오로지 남성에게 맞춰진다. 이것만 해도 심각한데 더 심각한 게 있다. 몰카, 리벤지 포르노다. 국산이랍시고 올라오는 동영상의 대부분은 척 봐도 AV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름부터 일반인에, 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찍은 몰카, 혹은 리벤지 포르노가 대부분이다. 포르노는 오만 배 정도 양보해서 성적 흥분을 의도하려고 만든 것이니 그렇다 치자. 동의할 기회조차 없었던 여자의 신체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영상이 ‘국산 야동’의 대부분을 차지, 성적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 쓰이는 것은 여자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가슴과 자궁을 가진 조각난 신체로써만 소비되는 현실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다.


Q 야동이 야한 건데 당연히 성적으로 대상화해야지, 안 하는 게 말이 됩니까?

A 그 뜻이 그 뜻이 아닙니다만..... 그러면 다른 걸 볼까.



 역대 최대의 청년 실업률과 맞닥트린 청년의 현실을 잘 그려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청년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누나도 있고 엄마도 있어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는 중식이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미쳐 빚을 내 성형하는 여자를 여자의 기본값으로 놓았다. 정말 묻고 싶다. 주변에 그런 여자가 있기는 있었나. 있었다면 청년의 ‘힘든’ 특징과 대비되는 자리에 놓을 만큼 이 시대 여성의 대표적인 특성인가? 여성에 대한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며 여성을 특수한 집단으로 가정하는 것이 바로 타자화, 객체화다. 여자가 성형을 많이 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태어났을 때부터 무한히 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여성을 그려낼 것이 아니라, ‘외모지상주의가 모든 성별에 동등하게 적용된다면 성형하는 비율이 한쪽에만 치우쳐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생각해봤어야 한다. 왜 여자가 성형 비율이 월등히 높을까.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남성중심사회의 욕망이 그 이유는 아닐까.




자유가 한국에 와서 고생이 많다......

 여기까지 본 당신들 중에 꼭 이런 당신이 있을 거라는 데에 오백 원을 걸겠다.

Q 노래 하나에 왜 그렇게 예민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도 없나요?

A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적어도 인권은 지켜져야죠. 미디어가 우리 가치관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젠더의식이 엉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혐오 발언에 표현의 자유는 필요 없다. 왜냐면 혐오 발언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이나 생각을 공론화할 수 있게 하는 표현의 자유를 막기 때문이다. 웃기려고 말하는 거 아니고 비꼬는 거 아니고 진짜다. 혐오 발언은 ‘인종, 종교, 젠더,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것을 근거로 해당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위협하는 표현’이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의도로,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위험과 해악이 없다면 혐오 발언을 국가가 규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에서 나타나거나 조장되는 혐오가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많다. 현재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위협과 공포뿐만 아니라 나아가 직접적인 폭력의 실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혐오범죄에만 국가 차원의 규제를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불편한 용기

 이 글을 본 후에도 대부분의 당신들은 이전과 똑같이 살 것이다. ‘여자가~남자가~’의 성별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워딩을 여전히 입에 달고 살아가는 당신도 있겠지. 하지만 똑같이 성차별로 점철된 사회에서 태어나서 마찬가지인 교육을 받고 자라도 남주가 여주에게 벽치기를 시전하며 성폭력-강제키스-을 저지르는 드라마를 견딜 수 없는 당신도 있다. 이제껏 살아오며 차별을 목격하지 않은 당신은 없다. 목격한 줄도 모르는 당신만이 있을 뿐.

 하지만 만약 친구의 사소한 한 마디가 거슬리기 시작한다면, 성별 고정관념을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당신들을 보면 무언가 말하고 싶어진다면, 미디어의 기본값은 왜 항상 남자이고 여자는 타자화되는지 의문이 들어 책을 찾아보기 시작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불편의 세계에 들어왔다. 당신은 이제 드라마, 화장품 광고, 남자 MC가 대다수인 예능, 매일 듣는 당신에 관한 참견들도 불편해질 것이다. 말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하기 시작할 거고, 당신이 전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차별당해왔는지 느낄 수 있을 거다.


Q 와, 그럼 매번 말 한마디마다 여혐인지, 성소수자 비하인지, 장애인 비하인지 생각해가면서 내뱉어야 돼?

A응. 당연. 사람이 항상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만 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지 않는 것과는 안드로메다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며 사는 건 불쾌하며, 우울하기도 하고, 화는 대부분 동반되며, 가끔은 너무 지쳐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당신이 이제껏 몰랐던 세상에는 화나는 일들이 많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예전보다 조금 불편한 삶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편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저소득층이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여성-의 눈물을 베개 삼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신’마저도 짓누르며 유지되던 ‘편함’이다. 당신이 어떤 사고로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왔는지, 왜 그랬었는지 한번 생각해봐라.

 다행인 건, 불편함을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 평등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불편해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프로불편러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글을 보며 여성혐오 기준이 뭔지 궁금하셨나요. 광고회사 사장이 만든 여성혐오적인 광고를 만들지 않기 위한 기준!

1) 광고의 상황 속에서 여성은 선택권이나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가?

2) 여성이 광고 속에서 하나의 신체의 부분만 단순하게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3) 광고 속에서의 여성이 현실적으로 도달 불가능한 외모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4) 만약 당신의 자매, 친한 친구, 혹은 당신이 이 광고 속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괜찮겠는가?




편집위원 한승이

seang0449@gmail.com

 .점



  1. 덧붙여 말하자면,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귀족층 여자아이들은 파란색, 남자아이들은 분홍색 옷을 입었다고 한다. 파란색은 섬세하고 우아한 색이고, 분홍과 붉은 계통은 활발한 이미지로 남자아이들에게 잘 어울린다고. 선천적으로 성별에 따른 선호색이 있다고 믿는 당신은 여기로 가 봐라. http://newspeppermint.com/2015/09/09/bluepinkboygirl/ [본문으로]
  2.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들을 둘러싼 기호의 질서는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 설사 아무리 깨인 부모가 아이들을 성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 딸아이에게는 탱크와 칼을 사주고, 아들에게는 꽃과 머리삔을 사준다고 해도 아이들은 마치 구심력에 이끌린 어떤 존재처럼 사회의 초자아가 정해주는 스테레오타입의 색깔을 스스로 선택하는 노올-라운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http://geonhi.com/korean/ [본문으로]
  3. 「OECD Data」 https://data.oecd.org/earnwage/gender-wage-gap.ht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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