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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나는 당신에게 묻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있다.

부편집장 | 김형민


  나의 글에 첫 단어를 ‘처참함’으로 시작하고 싶다. 처참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여러 대학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터져 나왔을 때, 내심 기대를 하며 우리대학에 미래융합단과대학을 제외한 6대 단과대학 (공과대학, 에너지바이오대학, 정보통산대학, 조형예술대학, 기술경영대학, 인문사회대학) 학장들과 교수평의회 그리고 총장에게 시국과 관련한 인터뷰와 시국선언에 대한 움직임을 물어보았다. 결론은 어떤 대학은 위와 같이 인터뷰 자체를 꺼려했고, 다른 대학은 움직임 자체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은 회의 결과, 우리대학 자체에서 교수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음은 러비의 시국 관련 인터뷰 요청에 B대학 학장에게서 온 이메일 답장 내용이다.



교수의 시국선언이 진행되지 않냐는 질문에 B단과대학 학장의 답변 원본.


참고로, 러비의 인터뷰요청은 서울대학교 교수 728명이 시국선언을 한 지 불과 이틀 뒤다.


 물론, 단과대학 학장들이 우리대학 모든 교수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결론짓는 지금까지, 우리대학 이름을 걸고 자체적으로 진행된 교수 시국선언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우리대학 교수평의회는 11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하 국교련)의 시국선언과 관련해 그 전날 (9일) 오후, 우리대학 교수들에게 참가 안내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전했다. 하지만 누가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우리대학 자체의 교수 시국선언이 아니라는 것에 그 한계를 갖는다.

 한편, 과거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에 성명을 올린 김종호 총장은 자신의 견해가 우리대학 전체의 입장이 될 수 있다며, 총장이 아닌 평교수였다면 인터뷰에 응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김 총장이 국정교과서 찬성 입장을 밝힌 시점은 총장 당선인 시절로 교육부에 승인 절차만 남은 시점이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총장을 얻게 됐으니 이와 같은 총장실의 입장은 영 깨끗하지 않다.

 서울대 교수 70여 명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이라는 깃발을 들고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집회에 참여한 것은 지난 1960년 4.19혁명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대학가에서는 이 시국에 ‘무슨 공부냐’며  펜을 놓고 왜곡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동맹 휴업이 진행됐다. 이쯤 되면,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교수가 시국선언을 하고, 학생이 동맹 휴업을 하는 다른 대학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유난’을 떠는 것인가?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대학들이 유난을 떠는 이 시국에 우리대학 교수들은 왜 침묵만을 일관하고 있을까? 또한, 침묵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교수님들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물으며 글을 마치겠다.


교수님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묻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있습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나라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하다가도 학교에 와서 수업에 임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은 정해진 수업 일정에 따라 진도를 나가기 때문입니다. 마치 세상이, 시국이 어떤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저는 오늘 당신께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까? 대부분의 학생이 좀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시국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학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가, 그러니까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그러한 이유에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약에 교수의 소임이 전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에서만 끝난다고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사라져버린 현 교단의 풍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단을 자처하는 자들에게 목적으로 대우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교수는 당신의 학문적 깊이 속에서 지혜를 던져주고 혜안을 길러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시대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아닐는지요. 자신들의 지식을 먹고 자란 제자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 세상을 공감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다행히도, 전국에 있는 많은 대학의 교수님들은 현 시국에 대한 부정의함과 안타까움으로 용기 있게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잘 못됐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불행하게 우리대학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학교 이름으로 진행된 ‘교수 시국선언’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시국이 잘 못됐다고, 나와 내 가족의 삶의 터전이 잘 못 됐다고, 더욱이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잘 못 됐다고 말하는, 그러한 공감이 우리대학 교수님들께는 아직 없나 봅니다.

 

 슬픔, 사랑, 우정 등을 나누며 좀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건만, 당신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는 조금 많이 먼 가 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100만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며 전국 각지에서 시국이 잘 못 됐다며 공감하고 있는데, 그러한 촛불이 우리대학 교수님들께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보니 교수님들의 언행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왜곡되고 부패한 권력과 무너져가는 조국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당신을 보며 혹여나, 당신들의 제자가 어떻게든, 나 하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이 됩니다. 당신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정말 그러한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던지기 위한 것입니까? 


 다시,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합니까. 당신과 당신들의 제자가 사는  나라가 망해가고 있건만, 진정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이제는 당신들이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